기억의 족쇄를 푸는 방법

by 온유
수치스러웠던 어린 시절의 몇몇 기억들은 어른인 나에게 족쇄가 되었다.


족쇄는 다신 그런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해 주겠다며 나를 제약해왔다. 족쇄는 나에게 어떤 의견은 밖으로 얘기하지 말라고 했고, 어떤 생각은 절대 지니지 말라고 했으며, 어떤 물건은 가까이만 가도 불쾌해하라고 했다. 그 날의 기억과 관련된 모든 것을 멀리하고, 네 것이 아닌 척하라고 했다.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나는 뭔가를 꾹 참고 삼키는 사람이 되었다. 느끼는 것을 억누르고 사람들이 보기에 괜찮은 사람으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인위적인 사람이 되는 일이다. 자연스러운 감정은 억압되어 표정의 변화가 적고, 떠오르는 생각은 수많은 필터를 통과해야만 말이 될 수 있었으며, 행동은 경직되었다. 그것은 족쇄인 동시에 안전벨트이기도 했다.


족쇄는 이런 말들을 했다.

"네 생각을 필터링하지 않고 말하면 넌 이상한 사람이라고 놀림을 받을 거야."

"자연스러운 느낌? 그전에 지금 네가 처한 상황에서 어떤 느낌을 말해야 사회적으로 적절할지 생각해봐."

"지금 네가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이 타당할까? 사람들에게 확인받기 전까지는 숨기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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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내가 몇 번의 심리상담을 받고,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고, 수치심이 작동하는 원리를 알고, 또 그것을 마주함으로써 조금 떨칠 수 있었다. 수치심, 혹은 죄책감, 소외감 등 사람마다 다른 핵심감정을 가지고 있다. 족쇄를 푸는 방법은 그 감정을 고스란히 재경함 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은 A라는 정보를 최초로 저장할 때뿐만 아니라, A를 꺼내어 사용할 때마다 A의 정보는 새롭게 업데이트가 된다. 마찬가지로 정서 역시 다신 꺼내어 쓰지 않으면 어린 시절 가장 고통스러웠던 상태 그대로 저장되어 있기 마련이다. 심리상담에서는 그것을 꺼내어 조금 더 괜찮은 경험을 덧붙여준다. 그렇게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아 족쇄가 된 감정은, 다시 마주해서 업데이트를 해 주어야 한다. 족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내담자들은 그 경험을 온전히 다시 떠올리기를 불편해한다. 그래서 아주 짧게 줄여서 말하거나 ‘그런 일이 있었죠. 하지만 별 일 아니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라고 축소시키거나, 깊이 들어갈수록 ‘다시 떠올리면 무너질 것 같아요’라며 두려워하기도 한다. 혹은 스스로를 분석하는 주지화 방어기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때 제가 이런 감정을 느꼈어요. 그래서 지금 이런 성격이 된 걸까요?’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그 날의 기억을 재경험 하는이다. 감정을 다시 느끼는 것이다. 가슴 아프게, 숨이 막히게, 눈물이 터져 나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강렬하게 느껴질 때까지. 그 감정을 꺼내어 사용해보고 조금 더 나은 결말을 나에게 선사하며,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몸으로 확인해야 한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이해할 때까지 말이다.


*감정의 작동원리는 레슬리 그린버그의 정서중심치료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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