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력 좋은 남자가 이상형입니다만

by 온유
나는 어릴 때부터 목소리가 아주 작았다.


그러다 보니 ‘뭐라고?’ ‘조금 크게 말해줄래?’라는 말을 참 많이 듣고 자랐다. 사람들은 내 말소리를 잘 듣지 못했고, 음식점에서 외친 ‘저기요.’들은 숱하게 묻혔으며, 혹여나 어떤 소리를 감지한 사람들도 다시 묻기 일쑤였다.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나는 익숙한 민망함을 느끼며 긴장감에 더욱 막혀오는 목구멍을 쥐어짜 소리를 내곤 했다.


그런 내가 삼십여 년 동안 본 중 가장 청력이 좋은 남자와 연애를 하게 되었다. 그는 지난 2년간 단 한 번도 나에게 ‘뭐라고? 잘 안 들렸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가끔은 나도 놀랄 정도로 작은 혼잣말까지도 귀 기울여 듣고 기억한다. 전화 통화를 해도, 직접 대화를 해도, 그는 내 말을 놓치지 않는다. 어떤 때는 내가 말을 해 놓고도 속으로 ‘아 너무 작게 말했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고맙고 신기하게도 그런 말조차도 알아듣고 대답해주었다.


아무도 못 듣는 소리를 누군가 들어준다는 것은 그렇게도 반가운 일이었다. 시간이 쌓이면서 대화하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밖에서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나도 모르게 ‘상대방이 잘 들을 수 있게 크게 소리를 내야 해.’라는 긴장감이 목에 실려 있었다. 그런 신경 쓰임의 한 올을 내려놓고 대화한다는 것이 마음이 편안했다.


또 하나의 변화로 내 목소리가 좋아졌다. 나는 심리상담 수련 때문에 내 목소리가 함께 녹음된 음성파일을 매일 같이 들어야 하는 지옥 같은 숙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몇 년째 내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최근 들어서 목소리가 조금 좋아진 느낌이 든다. 예전엔 목에 힘을 주어 억지로 소리를 냈다면, 지금은 '공기반 소리반'에 가까워졌달까? 목에 힘을 빼고 편안하게 말하니 '선생님 목소리가 참 편안하다'는 말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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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청력이 좋다고 표현한 것은 물리적으로 귀가 밝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건, ‘나와 함께하는 매 순간, 나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뜻한다. 그는 마치 엄마가 아기의 작은 울음소리에도 잠에서 홀딱 깨어 밥을 먹이듯 내가 내는 작은 소리에도 반응했다. 그리고 그게 무슨 신호인지 해석하려 애썼고, 나의 상태를 파악하려 관심을 기울였다.


이런 관심과 주의 집중은 값비싼 선물이나 화려한 이벤트처럼 겉으로 보이는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값비싼 선물보다도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화려한 이벤트보다도 감동적이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을 이야기한다. 직업이 무엇인지, 키는 큰 지, 패션 스타일은 어떤지. 하지만 그 틈을 뚫고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소중하게 보아야 한다. 내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청력 좋은 사람을 말이다. 반대로 누군가 내 말을 잘 놓친다면, 그것 역시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사소한 일은 결코 사소한 법이 없다. 어떤 거대한 것의 일부분만이 보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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