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찬란했던 엄마의 삶이 스며든 청춘의 시
엄마의 청춘
그리고, 순수를 담은 시
샤워를 하며 이번에는 어떤 글을 써볼까 고민하던 찰나, 설레는 주제가 문득 떠올랐다. 샤워를 하는 동안 몽글하게 몸 위를 감싸던 거품처럼 피어오른 이야깃거리들이 날아가버릴까 꽉 잡아놓은 기억들을 메모장에 적어냈다. 샤워를 하며 문득 떠오른 것. 바로 '엄마의 시'였다.
지난번 엄마와 함께 새롭게 맞이하는 계절을 맞아 옷장 정리를 하던 차에 낡은 파일 속에서 엄마의 시를 발견했었다. 켜켜이 겹쳐 올려놓은 간이용 서랍 가장 마지막 칸엔 엄마가 살아온 날들이 고이 담겨 있었다. 엄마의 글은 어릴 적 함께 주고받던 편지에서만 보았던지라, 코팅까지 해서 색이 바랜 파일에 곱게 끼워져 있던 엄마의 시는 더욱 새로웠다. 접고 또 접혀서 구멍나버린 종이봉투 속에 간직되어 있던 편지들, 엄마의 시간을 잡아둔 채 끼워져 있던 바르게 코팅된 엄마의 시. 이제는 보기 힘든 8090년대 로맨스 영화에서 나올법한 문장들 새로 아련한 감성이 물씬 풍겨왔다. 순수하면서도 따스하면서도 깊이가 스며있는 듯한 문체까지. 이 모든 것들이 나의 눈을 반짝이게 만듦에 충분했다. 엄마의 청춘에 대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정했다. 이번 글의 주제는 엄마가 적어 내린 청춘을 담아보기로.
글을 적기 전, 원작자에게 동의를 구하고자 엄마에게 브런치에 엄마의 시를 올려봐도 되겠냐고 물었다.
"에이, 잘 쓰지도 않고 쑥스러운데 뭐하러 올려."
"왜! 사보에도 올랐을 정도면 잘 쓴 거지?!"
말은 그렇게 뱉었지만 딱히 부정의 뜻도 전해지지 않는 엄마의 답변에 확신을 더할 끈질긴 설득으로 부추겼다. 끝내 안방 깊숙한 곳에 잠들어있던 엄마의 시를 엄마의 손으로 직접 건네받아냈다. 5개 남짓되는 몇 개 되지 않는 시였지만, 그 5개의 시만으로도 나는 엄마의 청춘을 엿볼 수 있었다. 더불어 내가 왜 글을 좋아하게 된 건지도.
나는 그 시절 엄마가 좋아했던 시를 써 내려갔던 것처럼 엄마의 취미를 되찾길 바라고 있다. 내가 엄마의 시를 처음 접한 뒤로부터 엄마는 왜 시를 쓰기를 그만둔 건지 더욱 궁금해졌다. 아마도 생계를 위해 더욱 바빠진 삶과 가정을 꾸린 뒤로 쉴 틈 없이 우리를 낳고 키우느라 어느덧 글과 멀어졌겠지만 그래도. 엄마가 그토록 즐기던 취미만큼은 지켜졌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젊은 시절, 취미, 그리고 엄마의 어린 날에 간직하고 있던 순수함까지. 사각거리며 연필로 끄적이던 시는 그만큼 엄마의 인생을 담고 있었으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다. 엄마가 나에게 '엄마는 글을 좋아해' '엄마는 시를 즐겨서 읽었어'라는 말을 건넨 적이 없지만 나는 엄마가 보내온 젊은 시절을 따라 어릴 적부터 지금 이 순간에도 글을 적고 있다. 어릴 적 엄마와 주고받던 편지, 지금은 아스라이 추억으로 담긴 그때의 기억만으로 엄마의 따뜻했던 문체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편지에 담겨있던 엄마만의 문체는 엄마가 적어 내린 시에도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엄마의 문체는 마치 고요히 쌓이는 눈을 창문 너머 바라보듯 잔잔하게 전해오는 편안한 분위기를 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엄마의 장점이자 정체성이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엄마는 시, 딸은 글. 종류도 다르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수많은 문체들이 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엄마가 갖고 있던 따스한 문체만큼은 어느 정도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면서 반드시 담아내고 싶은 것.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씩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글을 쓰며 항상 담고 싶어 하는 것, 편안함과 따뜻함이었다. 나는 내가 느꼈던 감정이나, 내가 본 것들에게 대해 따스함을 곁들이려 노력한다. 스펙터클하고 휘황찬란한 이야기들도 좋지만 그저 마음 편안하게 읽어 내릴 수 있는 글을 적어내고 싶다. 글로 설명해내기는 어렵지만 항상 내가 적어내는 글만큼에는 때 묻지 않는 순수함이 오래 자리하길 바란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선 나부터가 때 묻지 않아야겠지만...!
지금처럼 디지털이 발전되지도 않았던 그 시절, 사각사각 종이 위를 밟으며 써 내려갔을 엄마의 글씨들이 상상을 스친다. 엄마는 엄마를 스치는 어떤 것들에 영감을 받았을까. 그 시간들 속에서 엄마는 누군가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적어내렸을까. 본인을 위한 위로였을까? 시 속에 담긴 어떤 대상에 대한 엄마의 무한한 감사였을까.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라도 엄마의 그날을 볼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엄마의 시 중 가장 와닿았던 몇 개를 엄마를 대신해 여기 이 페이지에 옮겨보려 한다.
낭만과 따뜻함, 슬픔과 자신을 향한 위로, 그리고 스스로에게 남기는 다짐이 담긴 엄마의 청춘이었다.
홀로 선 바다
_
바다!
바다가 그리운 오늘은
마음의 여행길에 나섭니다.
허황된 꿈도 아니고
낭만적인 것도 아닌
그저 소박하고 진솔한
작은 삶의 모습을 찾아서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시원한 바람, 갈매기가 날으는
홀로 선 바다는
그 무엇도 느끼지 못하고
오직,
홀로 섬에 익숙해져 있는 모습에
평온한 마음을 담아줄 뿐입니다.
웃음까지 잃어버린 모습이
흐르는 시간 속으로 사라지고
이제는
또 다른 여행길을 위해
떠났던 길을 되돌아 걸으며
이 저녁의 아름다움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추억
_
밤이 깊어간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이 밤
차가운 바람 소리만 숨 쉬고 있다.
물레방아처럼
쉬지 않고 돌고 돌던
내 작은 한 줌의 추억들이
낙엽이 떨어지듯이
나에게서 떨어져 가며
어두운 이 밤과 함께 포옹을 한다.
물감이 퍼지듯
아픔이 퍼지는
오늘 이 밤,
다시는 생각 말자며
영원히 접어둔 채로
살며시 눈을 감는다.
장미 꽃잎
_
이슬 맺힌 장미
동그마 하게 원을 그으며
슬픔에 잠겨 고요히 떨어진다.
한잎 두잎 화려하게 그 생을
시작했던 한송이의 장미
향기를 잃어가는 가엾은 꽃이 되어버린다.
후년을 기약하는 나의 마음에
희망을 가득 채워놓고
생을 잃어간다.
이제는 핑크빛 꽃내음도
절정에 다다르고
메말라 버린 땅 위에
살며시 슬픔 안고 떨어진다.
다시, 엄마의 열정이 불을 지필 때까지
딸이 그리는 엄마와의 버킷리스트
"엄마, 엄마도 다시 시 한번 써보는 거 어때?"
요즘 들어 내가 엄마에게 강력 어필하고 있는 질문이다. 엄마의 시를 알기 전까지면 모를까, 알고 나니 더욱 강력하게 엄마를 꼬시고 싶었다. 그때 그 시절의 순수함은 닳아 없어졌다 하더라도 지나온 삶이 주는 단단함으로 엄마만의 시를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엄마가 가진 따스함이 또다시 종이 위에 앉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꿈이었을 수도, 마음의 안식처였을 수도 있는 시를 다시 시작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되찾아주고 싶었던 엄마의 깊은 곳 열정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엄마에게 적극 어필하는 나의 상황, 마치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처럼 엄마와 나도 '엄마의 시 딸의 글'로 탄생할 수 있을 거라고 잔뜩 기대를 품고 있는 상황이다.
엄마에게 적극 어필하는 나의 말을 듣던 엄마는 피식 웃더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야, 노안 때문에 책도 맘 편하게 못 읽는데 글을 어떻게 쓰냐! 그리고 손 놓은 지 오래돼서 이제는 머리에서 영감도 잘 안 떠오를 거야"
그래도 아무렴 어떤가, 시작이 반인데!
지금 이렇게 진심으로 써 내려가고 있는 딸의 글이 엄마의 깊은 곳에 묻혀있던 버튼을 누를 수 있다면 좋겠다. 엄마의 시와 나의 글이 함께 브런치에 연재될 그날을 상상하며...
엄마에게 보내는 딸의 간절한 P.S
나랑 같이 해보자! 잊지 못할 모녀의 도전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