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영 Feb 06. 2024

장미


 마음 한 편에 억누를 수 없이 거대해진 욕망이 있어, 마음이 이따금 들끓곤 했다.

 ─ 한 번 만나볼까, 우리?

 튀어 오르는 마음을 막아낼 재간이 없어 핸드폰을 뒤엎고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재미없는 사람이라거나, 설레는 놀이에 지나지 않았다고 손가락질해도 어쩔 수 없었다. 마음이 시들해져 버린 게 아니라,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걸 들키지 않아야 했다.

 이제 나에게 사랑은 아프고, 이별은 지겹다. 그래서 아예 시작을 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아무도 이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은 그래도 연애를 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다짐은 결국 언젠가부터 나만의 비밀이 되었다.

 사랑에 관한 비밀이 생기면 끝까지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엔 점점 가시가 피어올랐다. 가까이 다가가려들면, 가시는 더욱더 날카로워졌다. 나만 품고 있어서 소중하고 단단해 보였지만, 남들에겐 보일 수 없는 약점 같은 거. 나의 비밀은 장미가 되었다.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나의 모습을 돌아본다. 사랑받고자 하는 욕심,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으로 망가져가는 내 모습을. 결국 남게 되는 건 공허한 나의 세상에 말라비틀어진 장미꽃다발일 뿐인데, 나는 왜 자꾸 내게 약점이 될 만한 것들에 끌리는 걸까? 내 마음에 사랑이 부족해서 그럴까.

 이별이 두려워 사랑을 억지로 밀어내고, 지금의 내 처지를 본다. 내가 지금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도 되는지를. 돌아보면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가족도, 친구도,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나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는데, 왜 더 크고 자극적인 사랑을 갈망할까? 상처를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두려워하는 겁 많은 사람이.

 '사랑도 사람도 욕심내서는 안 되지. 이딴 외로움 때문에 인생을 훼손시킬 순 없잖아.'

 내 안에 분명 결핍이 있어서, 나는 자꾸만 사랑에 목말라하는지도 모른다. 분명 충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결핍’을 생각하면, 어쩌면 나는 진심으로 저 사람을, 저 사랑을 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럼 내 마음대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모험을 떠나도 되지 않을까?' 그 사람이 뻗은 마음에 발이 걸려 넘어질까 불안해하면서, 끊임없이 내게 되묻고 답하기를 반복한다. 이 사랑이 단순히 외로워서인지, 정말 진심으로 이 사람을 사랑하는지, 내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사랑을 택할 수 있을지를.

 하지만 이미 나는 이 모험의 끝을 알고 있다. 그동안 수차례 경험해오지 않았나. 이 끝엔 상처뿐인 모험, 아무것도 없는 낭떠러지일 뿐이라는 걸.

 인생에 딱히 큰 기쁨 같은 것 없어도 된다. 그리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아픔이나 고난도 없었으면 한다. 나의 세상에 물이 들이닥쳐 깊게 가라앉았으면 좋겠다. 그냥,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큰 기쁨도, 그렇게 큰 아픔도 없이, 먹먹하고 고요하게. 아주 적당한 사랑과 적당한 삶, 거기서 오는 적당한 기쁨과 적당한 슬픔정도.

 나의 삶에 들이닥칠 태풍이나 해일 같은 것은, 이제 그런 모험 같은 것은, 현재의 내가 감당하기엔 난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 같은 것, 이제 나의 시대가 아니다. 비밀 같은 것, 아름다움으로 포장한 추억 같은 것, 모두 덮어두고 말이다.

 그런 의미로 내게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가리킨다면, 기꺼이 수용해야 할 테지.

 ─ 난 연애 안 해.

 이 말 한마디에, 이 모든 생각들이 담겨있을 리 만무하겠지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대화창(窓)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