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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Feb 14. 2024

 사람이 범죄에 관대해지게 되는 때는, 그게 잘못이라는 걸 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게 될 때, 마음 한 편에는 죄명이 찍힌다. 양심 있는 어떤 이는 낙인찍힌 죄명을 평생 달고 속죄하며 살아가고, 또 어떤 이는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마음 한 편에 덮어 둔 채 살아간다. 타인에게 티 나지 않게, 홀로 식지 않은 총구를 가슴에 겨냥하며 자신의 세상에 남은 은밀한 비밀을 영원히 제거해 버리기를 원한다.

 양쪽의 선택은 마치 천국과 지옥 같아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잘 알고 있는 때도 있다. 천사의 속삭임을 선택하는 것이 지당했지만, 모든 선택엔 늘 장단점이 존재했다. 우리가 지옥을 택하는 이유는, 그게 더 쉽고 더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밤새 술을 마시고 나자 정신이 흐릿해졌다. 상황 판단이 어려울 때, 사람들은 가장 쉬운 선택을 했다. 대쪽 같던 뚝심도 달콤한 말 몇 마디로 베이고, 그 단검은 어느새 도달하지도 못한 결과를 향해 칼끝을 겨누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럼에도 달콤한 지옥에 흔들리고, 칼날을 피해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어차피 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선택한 자의 몫이었다. 악마의 속삭임을 한 자들은 낭떠러지에 선 자들의 눈을 가리고, 귓가에 속삭였다. ─ 어차피 너만 입다물면 그만이야.

 세상에 악마와 나만이 알 온전한 비밀이 생기고 나면, 세상은 한층 더 다른 색감으로 보였다. 이걸 다채로워졌다고 해야 할까, 황폐해졌다고 해야 할까. 그 비밀은 나의 세상에 메아리 같은 소문이 되고, 그 소문은 다양한 감정들을 건드려가며 이따금씩 튀어나왔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누군가 대화하다 우연히, 어떤 현상을 보다 우연히. 그 우연한 상황 속에 펼쳐지는 내 안의 작은 영화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오점으로 남았다. 아무도 모르고, 나만 입다물면 되는, 아주 무겁거나 혹은 지저분할 수 있는 나의 비밀들로.

 취기를 못 이기고 택한 불쾌한 선택은 또다시 술을 불렀다. 술을 마신 순간만큼은 영원히 잊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술을 마셔야만 마치, 모든 잘못이 용서될 것만 같았으니까. 누군가에게 비밀을 들키는 날 단지, "술 때문에 그랬어요"라는 알량한 핑곗거리를 댈 수 있으니까. 나에겐 한없이 선하고, 누군가에겐 악의가 다분할 핑곗거리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핑계라도, 뿌리치지 못한 유혹을 어깨에 두른 나에게 얕은 방패막이라도 되어 줄 테니까.

 그렇게 또 밤새 술을 마시다 보면 정신은 흐릿해졌고, 맨 정신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들을 폭탄처럼 터뜨리고 나서야 연극은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다음날 아침, 술김에 벌린 무대가 끝났다는 것을 깨달을 때 즈음, 욱신거리는 머리와 함께 영겁의 후회와 잊고 싶은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이제는 어쩌면 "술 때문에 그랬다"는 핑계도 통하지 않을, 불쾌한 선택은 거대한 실수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뻔뻔스럽게도, 그 사실을 망각한 척한다면 또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럼 또 마음 한 편에 죄명이 적히고, 그 글씨가 또렷해질수록 사람들은 나를 '그런 사람'으로 기억할 터였다. 여기서 가장 첫 번째 줄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사람이 범죄에 관대해지게 되는 때는, 그게 잘못이라는 걸 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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