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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May 08. 2024

맞서는 마음


 정처 없이 밤길을 운전하다 문득, 목적지에 아무도 없을 걸 떠올린다. 어차피 그 목적지엔 아무도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시작했지만, 막상 혼자 떠나보니 덜컥 겁이 났다. 점점 차가운 색깔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던 노을빛은, 시간이 지나자 점차 칠흑 같은 어둠이 되었다. 가로등불빛 하나 없는 길 위에, 빛이라곤 오직 나의 자동차 헤드라인 불빛밖에 없었다. 창문은 열 수 없었고, 즐겁게 듣던 노래도 어느덧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왜 이렇게 생각 없이 운전만 하고 있는 걸까? 그냥 가만히 집에나 있을 걸, 잠시 후회하기도 했다.

 바람이나 좀 쐬고 싶었다. 그저 내가 최근에 겪은 일이라곤, 밤새 우울감으로 가슴 아파하거나 혹은 온몸이 불덩이가 되어 몸살을 앓거나 혹은 닥치는 대로 일만 했으니까. 모든 순간들은 촘촘히 쌓여 일상이 되었고, 그 일상은 깨부술 수 없는 단단한 벽돌이 되었다. 남모르게 우울감에 몸서리치다 눈을 뜨고 나면,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건 누구도 깨치지 못했다.

 어쩌면 변화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명분은, 내가 밤새 우울감으로 울음을 터뜨리던 날들이 증거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지독하게 반복되던 시간의 허리는 잘렸다. 휘몰아치는 감정 사이에서 홀로 우뚝 서야만 했다.

 어두운 밤길을 운전하며, 확실히 아무도 없을 그 목적지에, 나는 아랑곳하지 않으려 했다. 어차피 알고 있던 결과였다.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자, 그래도 생각보다 마음이 괜찮았다. 창문을 열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를 들으며 고요를 만끽한다. 차 시동을 끄고, 좋아하던 노래도 껐다. 그러자 그동안 외면해 왔던 자연의 소리들이 잔잔히 들려왔다. 자연의 소리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손가락으로 재생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늘 한결같은 소리를 냈다.

 목적지에 아무도 없을 걸, 종종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정말 소중했다고 생각한 것들을 다 잃어버리고, 이 세상에 덩그러니 나 혼자 남게 된 내 모습을. 나는 그동안 왜 그토록 세상과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싶어 했는지를, 왜 나를 구제하지 않고 버려두었는지를, 현재도 주변사람들과 자신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홀로 외롭게 밀어내는지를, 나는 스스로 답을 구하지도 못한 채 혼자 남겨질 나의 모습을 종종 떠올리며 두려워하곤 했다. 그러나 내가 가고자 했던 목적지에 다다르는 순간, 나는 차가운 두려움 대신 포근함을 느꼈다. 육지를 잇는 대교에 찬란한 불빛이 펼쳐지고, 바다 위에 반짝이는 윤슬과 넉넉한 바닷바람이 나에게 조금 위안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충분한 위로를 주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홀로 서 있음은 두렵고, 무서웠다. 다만, 외로움도 맞설 수 있는 것, 그저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삶에 어떤 정답이 있다면, 그 방향을 일러주는 이는 누구일까. 나는 언제나 삶의 정답에 대해 수없이 고민해오곤 했다. 어떤 날은 열정이 가득 차올라야만 의미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했고, 또 어떤 날은 강가처럼 잔잔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떻게 살아도 사람들은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그저 나 자신이 편안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솔직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지평선 너머, 이름 모를 마을에 반짝이는 불빛이 일렁인다. 누군가의 집이거나, 또는 누군가의 일터일 수도, 또는 그저 가로등 불빛일 수도 있다. 나의 인생도 멀리서 보면 그런 게 아닐까. 정답 같은 건 없다. 외로움도 두려움도 온전히 모두 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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