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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l 16. 2024

희망차게 영화롭게


 노력하지 않는 삶이 없는데, 타인의 목소리에 작아지는 건 왜일까? 예전에는 내가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다면, 요즘에는 내가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성공담을 들으면,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를 떠올려본다.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존재하기는 할까. 누군가는 내 내면이 강해 보인다고 했지만, 사실 나의 영혼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비틀거리며 짙은 폭풍우 사이에 힘겹게 서 있었다.

 언제나 늘 그렇듯, 사람들은 타인의 노력에 대해서는 아무렇게나 이야기했다. 그깟 게 뭐가 힘들다고, 나는 더 한 것도 버텼다고. 한때 나도 '세상에 나만큼 힘든 사람이 없다'라고 말하며 우쭐거리곤 했다. 세상에서 누가 제일 힘들까, 누가 더 오래 버틸까 겨루는 대회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때의 나는 현재보다 더욱더 자존감이 무너져있었던 듯하다. 남들보다 힘들기라도 해야 내세울 것이 있는 것처럼. 힘들어도 버티는 내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줘야만 직성에 풀렸던, 철없이 툴툴거리던 20대. 그때의 나는 힘든 게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양 힘듦을 떠벌리고 다녔다.

 고찰이라는 심해에서 회오리를 만나, 밑바닥까지 끌려 내려가본 적이 있었다. 그 회오리의 이름은 '우울'이었다. 밝게 사는 타인의 모습을 동경하기도 했고, 그저 부족하기만 한 나 자신에게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땐 그걸 노력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용기나 힘 따위가 없었다. 한때는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데, 우울감에 사로잡혔을 때는 평범함 조차 꿈이 되었다. 이런 울적하고 어두운 생각 따위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집밖으로 좀 나가라고 했다. 그러나 그게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되지 않았다.

 ─ 너무 우울해있는 것 아니냐, 집에만 처박혀있는 것 아니냐.

 사람들의 말에 휩쓸리다 보면, 정말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왜 요즘은 마음에 물이 찬 것처럼 답답하고 괴롭지? 과거의 나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상냥한 위로 대신 모진 말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나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났고, 더 빨리 지쳤고, 또 더 깊게 우울해졌다. 누가 나 좀 꺼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도, 또 한 편으론 아무도 나를 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런 날들이 꽤 오래 흘렀다.

 우울해서 미칠 것 같은 지경에도, 그 고찰의 폭풍우에서 살아남은 나는 오히려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스스로 수없이 어그러지고 뒤집혀보며, '타인의 입맛'에 맞춘 삶을 살지 않게로 한 것이다. 울적할 땐 밖을 나가라, 혼자 집에 있으면 좋지 않다, 사람들을 만나 수다를 떨어라…. 그런 의미로 본다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는 것 같다. 나는 이제 외려 울적한 기분이 더 좋아졌다.

 성향과 맞는 나만의 평화를 찾는 게 중요했다. 내 주변이 요란한 폭풍이라도, 내 마음만 확고하면 굳세게 걸어갈 수 있었다. 주변의 소음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요란한 건 내 머릿속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지혜롭게 헤쳐나갈 것인가, 앞으로 나의 미래는 몇 십 가지의 변수가 있게 될까, 그럼 거기에 대비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탄탄한 플랜을 세워야 할까를 고민했다. 나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이 얼마나 확고한지, 내면의 고요한 폭풍 속에서도 얼마나 튼튼한 집중력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했다. 나는 그것이 진정 나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라 여겼다.

 나를 사랑하면, 나의 힘듦도 더는 자랑거리 삼지 않게 된다. 자신의 힘듦을 타인과 견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이보다 더 확실한 선택과 집중이 있을까? 나의 영혼이 단단하니 오히려 폭풍 사이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 나에게 주어진 인생이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하는 것. 어쩌면 운명은 내가 짜놓은 계획이란 틀에서 기회를 만나는 것 아닐까? 그것을 세상은 '행운'이라고 부르겠지만, 행운을 만나기 위한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를 떠올려본다면, 현재 나에게 주어진 인생이란 선물을 감사히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나에게 주어신 삶을 소중히 여기고, 하루하루 희망차고 영화롭게 살아가는 삶. 나는 그것을 내가 앞으로 쓰여나갈 내 인생의 책 한 권이라고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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