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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플레 Dec 18. 2023

<바빌론>, 영화는 과연 저속해야만 할까?

영화를 향한 셔젤의 예찬과 애정이 <바빌론>에 묻어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다만 <바빌론>이 ‘영화’를 통해 ‘예술’의 본질에 가까워지고 싶은 건지, ‘예술’을 통해 ‘영화’에 본질에 가까워지고 싶은 건지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영화라는 점이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그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 스크린을 바라보는 매니의 얼굴, 그의 홍채에 반사된 스크린의 상, 그가 흘리는 눈물 속에 함축된 내면, 치열하게 현장을 오가는 자들의 땀방울 속에 있다는 입장에 굳이 반기를 들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영화라는 예술의 속성이 단지 저속하다고 상정해야지만 그 본질을 찾을 기회가 주어지는 걸까? 소수의 고상한 이들이 향유하는 예술이 아닌, 대중들이 손쉽게 소비하는 저속한 대중예술이라는 점에서만 그 본질이 비롯될 수밖에 없냐는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위선자들을 향해 넬리가 구토를 쏟아내는 사교장 시퀀스는 영화 예술과 영화를 바라보는 예술계의 태도를 <바빌론>이 스스로가 어떻게 희화화하는지 알려주는 명확한 구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바빌론>은 계속해서 오물을 내세운다. 매니의 오줌, 넬리의 구토뿐 아니라 코끼리의 똥, 가짜 정액, 솟구치는 피 등 각종 분비와 배설의 향연이 '영화'와 떼려야 뗄 수 없으며, 그 저속한 속성이 영화의 단면이자 본질과 맞닿아 있다는 태도를 은근슬쩍, 아니 영화 내내 내비친다. 이때 <바빌론>이 ‘영화는 필연적으로 저속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주장을 일관하며 직관적인 오물 모티브를 끌어온다는 점이 의아함을 자아낸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뒤따라 붙는 질문. 우리는 과연 영화가 언제나 더러운 오물의 본질과 맞닿은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부각되는 쟁점은 바로 '더럽다'는 개념이 대중예술과 직결될 수 있는지의 여부다. 다시 말해 관현악 연주와 오페라 공연이나 연극은 언제나 투명하고 깨끗해야만 하고, 대중예술을 대표하는 영화는 항상 지저분할 수밖에 없냐는 질문이 따라올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오물·배설 모티브를 곧 영화의 속성과 연결짓고자 하는 <바빌론>은 자칫 대중은 우매하고 저속하다는 통념을 당연한 듯 늘어놓는 궤변의 영화가 될 위험지대에 놓인다. 바이올린 연주가도 무대 위에서 내려오면 알콜중독자가 되거나 성욕에 환장하는 미치광이가 될 수 있다. 영화인들만 그러라는 법이 없다. 하지만 <바빌론>에는 ‘소수만 향유하는 고상한 무대예술-값싸게 즐기는 저속한 대중예술’이라는 선명한 이분법이 맴돌고 있다. 우리는 카메라가 돌아가는 촬영 공간, 노랫소리와 안무가 수놓는 무대 위를 포함해 '현장 예술'이 성립되는 모든 영역의 정체성을 몇 갈래의 단순한 지표만으로 재단해낼 수 없다. 또 무대의 커튼 너머나 카메라의 프레임 바깥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들 역시 단지 몇몇의 돌출된 특징만을 지닌다고 단언할 수도 없지 않은가.


사실 그런 이유에서 보면 예술과 일상이 구분되지 않으며, 프레임 내부와 외부를 오가는 진동 그 자체에서 우리가 영화 예술의 본질과 맞닿은 사람들의 진심을 엿볼 수 있다고 털어놓는 <바빌론>의 화법 자체는 인상 깊게 다가온다. 촬영장과 일상 공간을 계속해서 교차하고 겹쳐놓는 <바빌론>의 여러 시퀀스에도 역시 그런 의중이 담겨 있지 않은가. 하지만 <바빌론>의 맹점은 예술과 일상이 구분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예술의 카테고리 내부에서 클래식과 연극, 오페라를 영화와 분리하려 든다는 점에 있다. 이로 인해 생겨난 혼돈의 무법지대를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바빌론>은 단지 영화가 저속하기 때문에 그 적나라한 속살을 곱씹어볼 때에 이르러서야, 총천연색으로 빛나면서 삶과 긴밀하게 연동되는 영화의 본질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되물어야 하는 질문을 놓쳐서는 안 된다. 굳이 영화가 저속해야만 하는 이유가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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