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나의 인생이 영화라면 지금은 기승전결 중 어디일까

미술관이 운영하는 카페의 특징

by Minah
IMG_6050.jpg?type=w966 GOMA 미술관이 운영하는 카페. 한쪽 벽면이 하나의 큰 메뉴판이다. 알파벳 하나가 내 주먹만 하다.


나는 좋은 공간에 가는 걸 좋아한다. 여기서 좋은 공간이란 작은 방 안에 갇혀있는 마음속에 어떻게든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고, 그를 통해 다른 관점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곳이다.

나는 주로 직관적으로, 직감으로 좋은 장소들을 찾아가곤 하는데 오늘은 미술관 GOMA에서 운영하는 비스트로 카페에 왔다.


IMG_6052.JPG?type=w966 강을 바라보고 있는 탁 트인 테라스에서 소이 라테 한 잔.



미술관 속의 공기는 바깥세상의 공기와는 조금 다르다.

조금은 착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그림을 구경하고, 그 그림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행복한데 그림이 상하지 않도록 맞춰놓은 온도와 습도에서 나오는 묘한 미술관 냄새가 있다. 그게 그렇게 중독적이다.


IMG_6057.jpg?type=w966 Cafe bistro GOMA 테라스 전경.


미술관의 분위기만으로도 좋은데 미술관이 운영하는 카페는 얼마나 더 좋을까. 좋아하는 두 공간이 만났으니 더 좋아질 수밖에 없다.

자세히 살펴보면 방문 동선 상 주요 고객은 미술관 방문객으로 전시를 다 둘러보고 난 뒤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에 카페를 들르는 경우가 대다수라 모두가 비슷한 분위기와 표정을 지닌 채로 쉬고 있다. 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일 수 있도록 해주는 장소들.


게다가 미술관에 달려있는 카페는 그마저도 하나의 전시 공간으로 인지하고 꾸며놓은 느낌이라 관찰하다 보면 색다른 면모를 많이 볼 수 있다. 마치 벽 한 면을 하나의 큰 메뉴판으로 꾸며놓은 GOMA처럼.


IMG_6058.jpg?type=w966 페리를 타고 다음 동선으로 이동 중

오늘은 잇 스트리트 마켓 (Eat Street Market)이 열리는 날이다.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서 각종 상점을 만들어 놓고 전 세계의 다양한 음식과 디저트, 음료를 판매한다. 무엇보다 중앙 공간에는 큰 무대와 좌석을 마련해둔 덕분에 아무 자리에 앉아 오랜 시간 바람 쐬며 무대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페리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옆에 있는 한 가족 (할머니, 엄마, 아기)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볼 만한 상영 중인 영화도 추천해주시고, 마켓 둘러보고 난 뒤에 '늦어도 몇 시까진 돌아오는 페리를 타야 한다'며 당부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IMG_6084.jpg?type=w966 마켓 입구. 컨테이너 박스를 참 예쁘게도 개조해 놓았다.


주차장에서 세 사람을 배웅하고 마켓 입구로 향하면서 한 두 번은 뒤를 돌아봤다. 좋은 사람이랑 만나고 헤어지고 나면 항상 한 두 번은 돌아본다. 그러다 보면 같이 눈을 마주치는 순간도 꼭 있다. 서로가 주고받았던 기분 좋은 에너지는 이렇게 잊지 않고 기억해두고 싶다.


IMG_6087.jpg?type=w966 활짝 웃고 있는 마켓 직원


식재료와 식료품을 파는 일반적인 마켓과는 다르게 잇 스트리트 노스 쇼어 마켓은 꼭 놀이공원에 있는 부스들 같다. 넷플릭스 영화를 보다 보면 나오는 10대 남녀가 교복을 입고 첫 데이트를 하는 놀이공원의 미니 버전 같은 느낌. 같은 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들뜸과 설렘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IMG_6105.jpg?type=w966 퀘사디아, 부리토, 타코를 파는 부스


음식을 파는 부스 종류도 다양하다. 한식, 일식, 중식, 양식, 아이스크림, 도넛, 기타 디저트 등등 특색에 맞게 깔끔하게 부스를 꾸며 놓아서 한 바퀴 돌며 어떤 게 있는지 구경하는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IMG_6108.jpg?type=w966 늘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는 퀘사디아


음식을 받아 편안한 자리에 앉았는데 여기서 사용하는 일회용 포크와 나이프는 생분해가 가능한 bio cutlery다. 꼭 아이들용 식기처럼 작고 귀여운 사이즈에 포장지조차 마음에 쏙 들어서 아카이브에 저장해 놓았다.


IMG_6137.jpg?type=w966 한 편에서는 귀여운 조명 빛 아래서 파티 중


무대에서는 밴드가 달달한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하고 있고, 부스에서는 전 세계 음식들을 판매하고, 작게나마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도 있고, 이렇게 파티도 하고 있다.

새삼 실감 난다. 오늘 금요일 밤이지.


IMG_6151.jpg?type=w966 해가 지면서 사람들이 늘어났다.


해가 지고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배경으로 행복한 소란 속에 있자니 왠지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만 내가 그 안에 있다기보다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바라보고 있는 기분.

조금은 쓸쓸했지만 다짐했다. 나의 인생이 하나의 영화라면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감독이니까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가든 그대로 내버려 두지는 말자고.

방치해서는 안된다.


IMG_6158.jpg?type=w966 한편에서 볼 수 있는 석양. 무대 위 노랫소리는 bgm으로.


모든 이야기에 기승전결이 있다고 가정하면 분명 나의 이야기도 그중 한 마디에 머무르고 있을 텐데 그걸 단순히 나이대와 연령대로 추측하는 건 옳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나의 이야기가 누구나 예측 가능한,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뻔하디 뻔한 해피엔딩 같은 이야기는 아니기를.


누군가가 마음대로 휘두르듯 지어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주체적인 이야기이길 바란다. 그렇게 만들 거다.


IMG_6208.jpg?type=w966 다시 시티로 돌아와 밤에 보는 휠 오브 브리즈번 (Wheel of Brisbane)



낮에 만난 가족이 당부해준 대로 너무 늦지 않게, 위험하지 않게 넉넉한 시간을 남겨두고 시티로 다시 돌아왔다.

밤에 바라보는 휠 오브 브리즈번은 낮과 다른 느낌으로 또 예쁘다.


브리즈번의 낮과 밤. 당신은 빛과 어둠 중 언제 더 아름다운 사람인가요?

사람이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건 참 아름다운 일이다.


IMG_6217.jpg?type=w966 아파트 문 앞에 가꾸어놓은 화분들


나의 일상으로 다시 들어가는 문.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들을 애써 감추거나 미루지 말고 다 겪고 적어두다 보면 나의 영화로 써먹을 재료를 하나씩 모으게 될 테니 반갑게 고맙게 여겨야지 다짐하는 밤이다.

오늘도 고마웠어.

내일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