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마음도 햇볕에 널어놓으면 바삭바삭해질텐데

브리즈번 새벽 5시 반, 운동가는 길.

by Minah
IMG_5979.jpg?type=w966 도심 속 휴식처 사우스뱅크 파크랜드


처음 밟은 호주 땅은 시드니였고, 그 날의 첫인상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분명 도심 속에 있는데 30분만 버스를 타고 가면 본다이 비치, 맨리 비치가 있어 바람을 쐴 수 있고 커피와 카페 문화가 발달해 있으며 자유로움과 방치의 중간 정도의 선에서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느낌.

자연과 도시가 한 자리에 뒤섞여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IMG_5976.jpg?type=w966 실제 바다의 모래와 야자수로 만든 인공 비치


브리즈번도 마찬가지다. 1988년에 국제 엑스포 행사장을 재구성해서 만든 사우스뱅크 파크랜드는 도심 속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고 언제나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이에 두고 쉴 수 있는 휴식처로 통한다.

작정하고 멀리 떠날 수는 없지만 혼자서라도 시원한 바람이 쐬고 싶은 날이나 햇볕이 따뜻하게 데워놓은 모래를 맨발로 밟고 싶은 날은 이 곳으로 향한다.


IMG_5978.jpg?type=w966 해 질 녘쯤 찾아오면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틈에서 노을을 볼 수 있다.


혼자 있기 싫은데 혼자 있고 싶을 때, 사람들 틈에서 혼자 있는 게 덜 외로울 때 커피 한 잔을 사서 모래 위를 걷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나처럼 혼자 있는 사람, 연인이나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얼굴로 물장구를 치는 사람, 딸내미를 데리고 수영을 가르쳐주는 아빠.


다들 각자의 행복과 위안을 찾으러 이 곳으로 왔다.


IMG_5986.jpg?type=w966 사우스뱅크 라이프스타일 마켓

그리고 나처럼 작고 예쁜 소품들이나 길에서 우연히 찾는 액세서리, 간식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치 뒤편에 있는 사우스뱅크 라이프스타일 마켓을 구경해도 좋다.

나는 현지 마켓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요일별로 열리는 마켓 일정을 한 달 치 달력에 표시해 두고 틈틈이 구경하고, 찾아다녔다.


IMG_5995.jpg?type=w966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를 타면 집까지 금방이지만 동네 근처 골목 골목길을 더 알아가고 싶을 땐 기꺼이 집까지 걸어간다.

해가 질 무렵에는 보랏빛 하늘도 볼 수 있다. 브런치 가게인 morningafter. 의 타이포그래피가 예뻐서 나의 아카이브에 또 하나 저장했다.


IMG_6003.jpg?type=w966 자연이 만들어낸 하늘색


8시 조금 넘은 시간인데 동네는 이토록 조용하다. 아마 이 동네 최고의 새벽형 인간을 뽑으면 내가 뽑히겠지 싶다.

IMG_6013.jpg?type=w966 운동가는 가벼운 발걸음


이튿날 새벽, 요가 스튜디오 Soba로 향하는 길. 클래스가 빠르면 새벽 5시 15분부터 있는데 이 시간엔 나처럼 부지런한 사람은 별로 없겠지 싶지만 늘 동네 주민들로 꽉꽉 차있다.

사람들은 다들 부지런히 각자의 일상을 살아간다.


IMG_6018.jpg?type=w966 요가 스튜디오에서 운영하는 카페 Soba social


조금 일찍 도착하면 Soba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장난치며 오픈 시간을 기다린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맞는 햇빛도 참 오랜만이다.

회사일로 급하게 새벽에 나설 때면 늘 택시 뒷좌석에 눈을 감고 자느라 햇살이며 공기며 느낄 틈이 없었다. 그만큼 내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IMG_6024.jpg?type=w966 barre 클래스 소도구들


무심하게 묶어놓은 커튼과, 오늘 수업 때 개인별로 사용할 소도구들. barre 클래스는 처음 듣는데 이렇게 에너제틱하고 힘찰 줄은 몰랐다. 60분 내내 아령을 들고 근력 운동을 하는데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팔이 후들거리는 바람에 손을 들 수가 없었다.

맞은편에서 포기자가 속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귀엽기도 하고 나 혼자 정이 들기도 한다.


IMG_6025.jpg?type=w966 스튜디오 전경



수업이 다 끝나면 꼭 스프레이로 개인이 사용한 매트를 깨끗이 닦아준다. barre 운동할 때는 늘 에너지가 넘치는 팝송을 배경음악으로 틀어두기 때문에 사람들의 운동 전후 표정이 다르다. 다 함께 운동을 하면서 같이 잠을 잔뜩 깨우고, 가벼운 느낌으로 활기차게 스튜디오를 떠난다. 졸리고 피곤했지만 '늘 다녀오길 잘했다'라고 느끼게 된다.


'괜히 왔다' 싶은 그 반대의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IMG_6026.jpg?type=w966 스튜디오 입구



시작과 끝은 항상 중요하다. 어디론가 들어가고 나가는 문도. 들어갈 때의 마음가짐과 나올 때의 기분에 늘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머무는 곳에서도 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이 현관과 신발장이다.

Welcome 하는 기분, 그리고 잘 다녀와하는 기분을 주고 싶다.


IMG_6027.jpg?type=w966 미닫이 문



barre, 필라테스, 요가, 명상 등 클래스가 다양하고 원하는 대로 어플로 미리 신청해서 종류별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곳. 무엇보다 대표가 내 나이 또래의 2명의 여자분인데 디자인 센스, 마케팅 센스가 남달라서 배우고 싶은 부분이 정말 많다. 참고로 인스타그램 계정은 @wearesoba이다.


IMG_6028.jpg?type=w966 타이포그래피가 정말 예쁘다.


나의 사진첩 앨범 카테고리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테리어 디자인과 타이포들. 주변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IMG_6034.jpg?type=w966 새벽 메뉴 = 소이 라테



새벽 운동을 가기 전엔 늘 소이 라테를 미리 만들어 천천히 한 잔 마시다가 출발한다. 조용히 내 몸을 깨우는 시간이 좋고, 멍 때리며 LP판 듣는 것도 하루를 시작하는 큰 행복이다.


IMG_6040.jpg?type=w966 케일 사과 주스와 아보카도 샐러드.


그리고 운동을 다녀와서는 매일 만들어 마시는 케일 주스와 아보카도 샐러드를 먹는다. 잔뜩 배고픈 상태에서 먹어주면 몸에 건강한 것들이 곧바로 흡수되는 기분이 든다.

* 케일 사과 주스 = 케일 8장 + 사과 1/2 + 물 100ml

* 아보카도 샐러드 = 아보카도 1/2 + 발사믹 식초 1 tsp + 올리브유 1 tsp


IMG_6044.jpg?type=w966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견한 예쁜 집


브리즈번으로 떠나오기 전 나의 몸 상태가 가장 좋지 않았었다. 큰 병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링거 투혼이 잦았고 내과, 피부과 약을 달고 살았다. 아마 마음이 힘든 것까지는 속일 수 없었겠지?

아직은 중간 과정 중에 있지만 매일 이렇게 좋은 에너지와 기운을 주는 곳에서 마음을 햇볕에 말려두다 보면

빨래처럼 잘 마르고, 그러다 보면 마음속 곰팡이가 사라지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매일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