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해외에서 기억을 저장하는 나만의 방법

나만의 향수와 선곡 플레이리스트에 기억을 담다

by Minah
IMG_5869.jpg?type=w966 하루의 아침은 항상 케일 사과를 갈아 마시는 것으로 시작. 귀여운 방울토마토도 한 번 사봤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나에게 끼치는 영향은 정말 어마 무시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나는 보통 자고 일어나면 가장 먼저 가는 향하는 곳이 부엌인데 부엌 분위기나 인테리어가 내 맘에 꼭 들어서 왠지 오늘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마구 몰려오기 때문이다.

부엌에 가면 졸린 눈 비비며 스피커부터 틀어두고 편안한 노래를 선곡한 다음 내가 좋아하는 소이 라테를 만든다. 커피를 워낙 좋아하는데 이 부엌에서 커피 만드는 건 더 좋아서 전날 밤에 잠들기 전에 커피 마실 생각을 하면서 '빨리 내일이 됐으면 좋겠다' 싶은 때도 많다. (거의 매일 밤 그렇다.)

그렇게 커피와 간단한 아침을 먹으면서 창 밖으로 등교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엄마 아빠, 출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의 미래에도 저런 그림이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도 하곤 한다.


IMG_5887.jpg?type=w966 겉에서 보면 평범한 카페 같지만 앞으로 들어가면 건물 중정에 큰 가든 카페가 있다. 비밀의 공간.


나는 마트와 식료품점을 좋아하는 만큼 카페를 좋아한다. 커피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공간이 주는 좋은 기운과 영향력'을 믿기 때문이다. 모던함과 소탈함, 번잡함과 단순함, 이런 특색에 대한 특별한 호불호가 있는 건 아니다. 꼭 사람처럼 공간도 각각의 매력이 있는 거니까.

다만 그 각각의 색깔로 인해서 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지고, 타인과 세상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지는 마음이 든다면 충분하다. 오늘은 커피 아이코닉이라는 곳으로 가본다.


IMG_5888.jpg?type=w966 나의 조합 : 아이스 라테 with 소이. 이 날 대체 우유 중 zymil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오늘은 실내보단 자연 자연한 외부에서 쉬고 싶었다. 시드니나 멜버른에서도 느꼈지만, 브런치 문화가 발달한 호주의 카페들은 내추럴한 환경 그 자체를 가게 인테리어에 적극 활용하는 것 같다.

다 뜯어고쳐서 최신의 유행을 따라 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 내가 가진 환경을 어떻게 내 것으로 흡수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나의 색깔이 결정되는 것 아닐까. 사람을 이끄는 마지막 한 스푼의 비결 같은 느낌이다.

그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이 좋았다. 나는.


FullSizeRender.jpg?type=w966 실내 공간도 있지만, 옆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면 나오는 탁 트인 정원이 훨씬 아름답다.


점심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붐비지 않는 건물 속 중정에서 자리를 잡아 앉아본다. 정원에 있다 보니 테이블이나 의자 위에 나뭇잎들이 종종 떨어져 있는데 손으로 툭 털고 털썩 앉는다.

많은 걸 따지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가만가만히 바라보면 신기하게 마음도 편안해진다.

그동안 얼마나 날이 서있었는지. 내가 가장 얻고 싶은 건 역시 마음의 안정감과 여유다.


IMG_5895.jpg?type=w966 공원 한 구석 같지만 4개의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 빌딩 숲 속 중정이다.


그렇게 한참을 소이 라테를 마시면서 요즘 꽂힌 노래를 여러 번 반복 재생한다.

해외에 나와 있을 때나 여행을 할 때 나만의 팁이 있다면, 그 시기에 꽂힌 노래를 유독 자주 듣고 그 나라에 어울리는 향수를 미리 선택해서 가져간 다음 매일 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그 시기 그 장소가 그리워지면 그 노래를 다시 들어보고, 그 향수를 뿌려본다.

그럼 자연스럽게 그때의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그때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과 함께.

참고로 이때의 나는 '지코 - 사람'이라는 노래를 많이 들었고, '조 말론 - 바질&네롤리' 향수를 늘 뿌렸다.


IMG_5915.jpg?type=w966 한쪽 벽면에는 담쟁이 풀들로 만든 카페 로고가 있다.

일러스트를 독학 중인 나에게 새로 생긴 버릇은 어디를 가든 마음에 드는 로고를 기록해두고 직접 따라 해 보는 것이다. 브리즈번엔 기록해두고 싶은 로고나 타이포그래피들이 정말 많다.

뭔가를 배우는 건 늘 한 발 떼기가 가장 어렵지만 나에게 새로운 감정과 활력을 가져다준다.

무엇보다 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들이라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IMG_5919.jpg?type=w966 구석구석 손때가 묻어있는 소품들.


그렇게 나의 아카이브 안에 새로이 추가된 공간. 예전엔 사진으로 뭔가를 남겨둔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는데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아카이빙하는 게 너무 좋다.

그게 대중적이고 트렌드 한 것이든 나만 아는 특별하고 희귀한 것이든 모아 두고 기록해 둠으로써 나의 색이 더해진다. 그 모든 것이 합쳐진 게 결국 내가 되는지도 모른다.


IMG_5926.jpg?type=w966 근처에 애플 매장이 있어 들렀는데 창문에 비친 나무 빛이 정말 예뻤다.


집에 오는 길엔 걸어서 애플 매장에도 들렀다. Go card (브리즈번 교통카드)가 있지만 장을 봐서 너무 짐이 많지 않은 이상 초반에는 많이 걷는 걸 좋아한다. 블로그나 포털에 이미 나와있는 카페나 레스토랑도 좋지만 걸어 다니며 우연히 발견하는 공간이 나에게 더 큰 기쁨을 가져다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너무 보장된 것, 정해진 길, 안전한 방법을 추구하는 것들은 시간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내 마음에 와 닿느냐와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이렇게 걷다 보면 사람도 장소도 저절로 발견하게 된다.

우연히, 그러나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