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주는 에너지가 있다고요?
혼자 산다는 건 참 신기한 기분이다. 때로는 나 혼자 공간을 독차지하기에 내 감정에 200% 솔직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주로 그 감정은 슬프거나, 힘들거나, 괴롭거나 한 경우가 많은데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왠지 모르게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가 어려우니까. 그건 아마도 가족이 공유하는 사랑과 애정만큼 걱정과 염려도 커서겠지.
그런데 혼자 지낸 지 시간이 꽤 흐르면서는 한국말을 입 밖으로 내뱉은 지가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을 새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나의 방식대로 그 외로움을 풀어내려 애쓰고, 그렇게 오늘의 행선지는 브리즈번의 대표 미술관인 GOMA다.
미술관에 가서 작품들 하나하나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나만의 방식이 있는 건 아니다. 나는 늘 작품 그 자체보단 작품이 놓여있는 공간이나 전시의 분위기나 구성에 더 빠져든다.
하나하나 따지고 비평하고 캐묻는 것보단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서 '오늘은 이 곳이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기는데, 개인적으로 장소에도 그 장소만의 기운과 에너지가 있다고 믿기 때문일 거다.
나를 환영하는지, 내가 이 곳에 어울리는지, 이 곳에서 내 마음이 편안한지. 그렇게 장소로부터 위안을 받으면 된다.
그리고 이 날의 GOMA는 나에게 충분한 위로를 주었다.
충분히 미술관을 둘러보고 나니까 배가 고파와서 근처에 있는 Nando's에 왔다. 이렇게 집 밖에서 혼자 밥을 먹으면 같은 음식도 1.5배는 빨리 먹게 되는 것 같다. 굴하지 않고 혼자 밖에서 밥을 잘도 사 먹는 편이지만 가끔은 맞은편에 앉아 웃으며 이야기 주고받을 사람이 그립기도 하더라.
유독 밥 먹을 때 그런 기분이 자주 드는 걸 보면, 한국인에게 '같이 밥 먹자'라는 건 참 큰 의미인 것 같기도 하다.
'같이 밥 먹자 = 오늘 나랑 같이 이야기 주고받으면서 마음 나누자' 뭐 이런 뜻 아닐까.
결국 작은 치킨 조각조차 반을 남겨 테이크 아웃하고 마음의 안식처인 한인마트로 간다. 잠시 잠깐이어도 한국 과자, 냉동식품, 반찬 등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부자가 되는 기분이고 특히 혼자 장보고 있는 또래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동질감이 느껴지면서 말이 걸고 싶어 진다.
다들 각자의 이유와 사정대로 여기서 살아가고 있구나. 그렇게 따지면 또 혼자는 아니다.
한인마트에 '지금 한국어로 말하고 싶은 사람' 이런 코너 있으면 안 되나요?
한인 마트에서 간단한 식료품을 사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Coles (마트) 도 들러서 괜히 한 바퀴 둘러본다.
그 어느 쇼핑몰보다도 훨씬 재밌고 볼거리가 많은 곳은 바로 마트다. 모든 과자 종류, 고기, 음료수, 식료품 전부 다 시도해보고 싶어 지는 곳.
결국 1인 가구인 나는 늘 같은 것을 사고 말지만 그래도 늘 새로운 마음으로 몇 번씩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그래도 다 잘 먹고 잘 지내자고 하는 건데 달걀이라도 free range eggs로 사자. 이런 데서 그나마 사치를 부려본다.
한인마트, 현지 마트를 몇 바퀴를 돌아본 거에 비해서 아주 조촐하고 소박한 쇼핑 리스트지만 사람 마음은 참 신기한 게 저렇게 선반에 올려만 두어도 마음 한 구석이 묘하게 안심이 된다. 사실 김치볶음밥 한 번을 스스로 해본 적이 없는 요리 실력이지만 무언가를 새로 시도해본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것도 사실이다.
원래 별 거 아닌 것들이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거지 -
사람 마음 움직이는데 큰 게 필요한 건 아니다.
벌써 저녁 8시. West End에 혼자 살면서 너무 위험하진 않도록 되도록 8시 전엔 집으로 돌아온다.
불 꺼진 큰 집에 혼자 불을 켜고 들어서면서 괜히 한 번 '다녀왔습니다' 하고 늘 말해보는데 하루의 시작이 빠른 이 곳이니만큼 하루의 끝도 빠른지 저녁 9시가 넘으면 옆 주택의 불빛이 다 꺼진다.
아무래도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가 빠른 이 동네에선 내가 가장 늦게 잠드는 사람인가 보다. 그 혼자인 마음을 Nando's에서 테이크아웃 한 음식을 먹으며 나의 노트북 작업 장소에서 달래 본다.
왠지 모를 안도감과 이 쓸쓸함도 다 적응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