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향수와 선곡 플레이리스트에 기억을 담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나에게 끼치는 영향은 정말 어마 무시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나는 보통 자고 일어나면 가장 먼저 가는 향하는 곳이 부엌인데 부엌 분위기나 인테리어가 내 맘에 꼭 들어서 왠지 오늘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마구 몰려오기 때문이다.
부엌에 가면 졸린 눈 비비며 스피커부터 틀어두고 편안한 노래를 선곡한 다음 내가 좋아하는 소이 라테를 만든다. 커피를 워낙 좋아하는데 이 부엌에서 커피 만드는 건 더 좋아서 전날 밤에 잠들기 전에 커피 마실 생각을 하면서 '빨리 내일이 됐으면 좋겠다' 싶은 때도 많다. (거의 매일 밤 그렇다.)
그렇게 커피와 간단한 아침을 먹으면서 창 밖으로 등교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엄마 아빠, 출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의 미래에도 저런 그림이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도 하곤 한다.
나는 마트와 식료품점을 좋아하는 만큼 카페를 좋아한다. 커피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공간이 주는 좋은 기운과 영향력'을 믿기 때문이다. 모던함과 소탈함, 번잡함과 단순함, 이런 특색에 대한 특별한 호불호가 있는 건 아니다. 꼭 사람처럼 공간도 각각의 매력이 있는 거니까.
다만 그 각각의 색깔로 인해서 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지고, 타인과 세상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지는 마음이 든다면 충분하다. 오늘은 커피 아이코닉이라는 곳으로 가본다.
오늘은 실내보단 자연 자연한 외부에서 쉬고 싶었다. 시드니나 멜버른에서도 느꼈지만, 브런치 문화가 발달한 호주의 카페들은 내추럴한 환경 그 자체를 가게 인테리어에 적극 활용하는 것 같다.
다 뜯어고쳐서 최신의 유행을 따라 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 내가 가진 환경을 어떻게 내 것으로 흡수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나의 색깔이 결정되는 것 아닐까. 사람을 이끄는 마지막 한 스푼의 비결 같은 느낌이다.
그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이 좋았다. 나는.
점심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붐비지 않는 건물 속 중정에서 자리를 잡아 앉아본다. 정원에 있다 보니 테이블이나 의자 위에 나뭇잎들이 종종 떨어져 있는데 손으로 툭 털고 털썩 앉는다.
많은 걸 따지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가만가만히 바라보면 신기하게 마음도 편안해진다.
그동안 얼마나 날이 서있었는지. 내가 가장 얻고 싶은 건 역시 마음의 안정감과 여유다.
그렇게 한참을 소이 라테를 마시면서 요즘 꽂힌 노래를 여러 번 반복 재생한다.
해외에 나와 있을 때나 여행을 할 때 나만의 팁이 있다면, 그 시기에 꽂힌 노래를 유독 자주 듣고 그 나라에 어울리는 향수를 미리 선택해서 가져간 다음 매일 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그 시기 그 장소가 그리워지면 그 노래를 다시 들어보고, 그 향수를 뿌려본다.
그럼 자연스럽게 그때의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그때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과 함께.
참고로 이때의 나는 '지코 - 사람'이라는 노래를 많이 들었고, '조 말론 - 바질&네롤리' 향수를 늘 뿌렸다.
일러스트를 독학 중인 나에게 새로 생긴 버릇은 어디를 가든 마음에 드는 로고를 기록해두고 직접 따라 해 보는 것이다. 브리즈번엔 기록해두고 싶은 로고나 타이포그래피들이 정말 많다.
뭔가를 배우는 건 늘 한 발 떼기가 가장 어렵지만 나에게 새로운 감정과 활력을 가져다준다.
무엇보다 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들이라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나의 아카이브 안에 새로이 추가된 공간. 예전엔 사진으로 뭔가를 남겨둔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는데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아카이빙하는 게 너무 좋다.
그게 대중적이고 트렌드 한 것이든 나만 아는 특별하고 희귀한 것이든 모아 두고 기록해 둠으로써 나의 색이 더해진다. 그 모든 것이 합쳐진 게 결국 내가 되는지도 모른다.
집에 오는 길엔 걸어서 애플 매장에도 들렀다. Go card (브리즈번 교통카드)가 있지만 장을 봐서 너무 짐이 많지 않은 이상 초반에는 많이 걷는 걸 좋아한다. 블로그나 포털에 이미 나와있는 카페나 레스토랑도 좋지만 걸어 다니며 우연히 발견하는 공간이 나에게 더 큰 기쁨을 가져다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너무 보장된 것, 정해진 길, 안전한 방법을 추구하는 것들은 시간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내 마음에 와 닿느냐와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이렇게 걷다 보면 사람도 장소도 저절로 발견하게 된다.
우연히, 그러나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