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Bridge 산책로에서 노을 보기
나의 하루는 언제나 이 스튜디오에서 시작된다. 아침 일찍 무심하게 묶어 올린 커튼 옆에 앉아 차례대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자리에 앉아 운동을 하다 보면 서서히 잠이 깬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몸이 깨는 느낌이다.
매일 스튜디오에 가면서 느끼는 기쁨 중 하나는 같은 시간대에 내가 알아챌 수 있는 익숙한 얼굴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이 마구 마구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신기한 게 운동을 어느 시간대에 하느냐에 따라서 분명히 효과가 다른 느낌이다.
새벽이나 아침 시간대에 하면 하루에 쓸 에너지를 바짝 끌어올리고, 활기를 만들어내는 느낌으로 몸 근육을 구석구석 사용해주고, 저녁이나 밤에 할 때면 최대한 몸을 풀어주고 릴랙싱하게 만들어 고요한 상태로 잠들 수 있게 진정시키는 느낌으로 몸을 캄다운시킨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내가 스스로 몸을 컨트롤하면서 수업을 듣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아침 운동이었던 만큼 약간의 의욕이 넘친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몸을 좋은 컨디션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공복에 신선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몸에 잘 흡수시켜 주어야겠다. 스튜디오를 떠나면서 마트에 들러 케일과 신선한 블루베리, 소이 밀크, 아보카도, 물을 사 왔다.
숨을 마시고 내뱉듯이 좋은 건 잘 흡수하고 마음의 독은 잘 보내줘야지.
같은 장소도 내 마음 따라 달리 보일 때가 있다. 내 마음이 척박해서 온 거리가 흑백으로 보이는 날엔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 있던 가게조차 스쳐 지나가게 된다. 제아무리 유명한 관광명소도 나에겐 의미 없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뿌옇게 가려져있던 시야가 조금 탁 트이면 그새 세상의 구석구석이 내 눈 안에 들어오고 딱 내 마음이 열려있는 만큼 좀 더 알아보고 싶어 진다.
그렇게 오늘은 한 뼘 열린 마음으로 브리즈번 시티를 산책하는데, 퀸즐랜드에만 있다는 Noosa chocolate factory를 발견했다. 100% 코코아버터로만 수제 초콜릿을 만들고 팜유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곳. 데크별로 초콜릿을 쌓아두고 무게로 팔기도 하고 각각의 데크엔 초콜릿 설명서를 써 붙여 놓았다. 한 우물만 파서 한 분야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가 되는 것만큼 멋진 일은 없다.
걷다 보니 해질 무렵 Story Bridge까지 왔다. 강변을 따라 산책로가 있어 노을 보며 산책하고, 달리기 하기에 최적인 곳이다. 이렇게 노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금세 뭉클해진다.
스토리 브리지 밑에는 강변을 따라먹고, 마시고, 즐길거리가 넘치는 Howard Smith Wharves가 있다. 레스토랑이나 디저트 가게, 호텔, 브루어리도 많고 때때로 웨딩 장소로 쓰이기도 하는 곳.
강변에서 야경을 보며 바람 쐬고 싶은 날이면 오고 싶은 곳인데, 화려하고 깔끔한 분위기에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bgm까지 깔려있어 혼자이기보단 함께일 때 더 신날 것 같다.
선선한 밤 아이스크림 하나 들고 산책하려고 많은 가게 중 젤라토 가게로 들어섰다. 이렇게 귀엽게 세팅해놓은 가게는 구경만 해도 마음이 행복해진다.
맛있는 거 먹을 때, 정말 예쁜 장소를 발견했을 때면 늘 소중한 사람들이 생각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혼자 있는 이 시간도 행복하다.
모든 사람의 눈에 매일매일 세상을 바라보는 필터가 주어진다면 오늘 하루 나의 필터는 full color였다. 무미건조한 흑백 필름 같은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면 감정에 동요가 없다는 장점은 있지만 내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하루로 만들 수 있는 확률은 낮다는 뜻이다.
반대로 이 많은 색들을 다 바라보고 있으면 평소에 몰랐던 거,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쳤던 거, 굳이 모르는 게 좋았던 것까지 다 알아보게 돼서 그만큼 내 마음에 동요도 생기지만 이 또한 하나의 추억으로 의미 있게 자리 잡을 수 있다.
예전엔 '최대한 무디게, 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싶고 세상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살면서 무엇이든 탁 털어내고 아무 일 없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흔히들 말하는 쿨하고, 단순하고, 효율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
작은 일도 너무 소중하게 여기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연연하는 나 자신이 초라하고 쿨하지 못하게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그런 눈과 필터를 가졌기 때문에 모든 순간을 누릴 수 있는 거라고 믿으면서 이런 나 자신을 나라도 폭 감싸주고 싶은 날이었다.
때로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