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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ah Jan 28. 2021

그 시절 영화관도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움찔하는 순간.

일 년 만에 찾은 템퍼관에서.


오랜만에 영화관에 찾아가 영화를 봤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영화관을 찾아갔던 게 무려 일 년이 넘었으니까 정말 정말 오랜만이다. 영화관은 나에겐 남다른 의미다. 

사실 중고등학교 때 드라마 보다가 밤새우고 학교 가는 날은 많았어도, 영화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 당시 드라마는 최소 16회 정도는 해서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내 나름대로 잘 받아들였던 것 같은데, 어린 마음에 영화는 이상하게 이해가 잘 안 됐다. 드라마에 비해 턱없이 짧은 2시간 정도의 러닝 타임. 두 주인공이 갑자기 사랑에 빠지고, 싸우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일련의 사건들이 단 두 시간 만에 벌어진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좋아했던 듯. 


그런 내가 영화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열아홉 즈음 대학에 가기 시작한 나와 달리 유학을 준비했던 친구 Y는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영어학원을 다녔기에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Y는 그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좋아하는 영화로 풀었다.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고 나와서, 이른 아침 시작하는 첫회차 조조영화를 보고 학원을 갔던 것. 피곤하지도 않느냐는 내 말에 Y가 이런 대답을 했던 것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영화도 좋은데 그것보다 영화관이 너무 좋아. 영화관에 앉아있으면 시작하기 직전에 꼭 놀이기구 타는 기분이야.' 그때부터였다. 내가 영화관에 가기 시작한 것은.


나는 특히 심야영화를 자주 보러 갔다. 집 가까이에 영화관이 있다는 점도 한 몫했지만, 그때 영화를 보러 가면 사람이 몇 없어서 정신없이 영화 속에 빠져들 수 있었다. 혼자 영화관에서 얼마나 울고 웃었는지. 나에게는 색다른 차원의 공간이었다. 누구라도 느낀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해도 되는 곳. 혼자든 함께이든 웃고 우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 나는 그래서 영화관을, 영화를 좋아했다. 그러다 급기야 영화업계에서 일을 하게 되었으니,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건 참 사소한 것임이 틀림없다.


회사에 들어가고 난 후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시간이 더욱더 늘었다. 그렇다고 내가 영화에 대한 대단한 지식이나 관점을 지닌 시네필(Cinéphile)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나는 마음에 드는 영화를 하나 발견하면 영화가 내리기 전까지 주구장창 영화관에 가서 그 영화만 다섯 번이고, 여섯 번이고 반복해서 봤다. 음악이든 영화든 사람이든, 뭐가 됐든 한놈만 패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나 보다.


근데 그렇게 한 영화를 여러 번 볼 때마다 참으로 신기한 점이 있었으니, 내가 늘 같은 장면에서 울고 웃는다는 것. 웃는 거야 그렇다 치고 우는 건 최소한의 감정을 필요로 하는 일인데 매번 같은 장면에서 눈물이 나는 게 이상했다. 그것도 희한한 게 꼭 남들 우는 장면에서 같이 안 울고, 남들 안 우는 장면에서 혼자 운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간 친구들이 항상 아까 그 장면에서 대체 왜 울었냐며 놀려도, 나도 원인을 모르니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그치만,


움찔하는 순간이 있다. 나의 마음이 건드려지는 순간.

여섯 번씩 영화를 되돌려봐도 매번 건드려지는 지점. 나의 약점이기도, 나의 강점이기도 한 바로 그 지점.


마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에 구글 맵으로 그 지점이 정확히 어디인지 알아볼 수도 없고, 따라서 내가 원할 때 직접 찾아가 볼 수도 없다. 내가 찾아갈 때가 아니라, 그 순간이 나에게 찾아올 때만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더 귀한 순간. 


한때는 괜히 마음 약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그 지점을 꽁꽁 싸매고 어떻게든 건드려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때도 있었다. 음악도 듣기 싫고, 영화나 드라마도 보기 싫고, 사람도 안 보고 싶고. 그렇게 해서라도 그 어떤 종류의 감상에도 빠지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딱딱한 마음으로 살면 약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딱딱하게 살아간다고 해서 꼭 강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

매번 똑같은 장면에서 웃고 울더라도 그건 내가 조금도 성숙해지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 

그때 영화관에서 이야기를 보고 듣는 건 나인 줄로만 알았는데, 실은 영화관도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것. 


그러니 한 번 더 움찔하게 되더라도, 겁먹을 필요 없는 거다. 나한텐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있는 거니까.

그 시절, 나의 웃음과 눈물을 묵묵히 지켜봐 줬던 고마운 영화관을 나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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