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달리기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밖을 좀 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매일 요가도 하고, 밖도 걷고, 밤엔 배드민턴을 치지만 최근에는 신기하게 체력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엔 열심히 뛰거나 달렸던 적이 없다. 평소에 동적인 운동보다는 정적인 운동을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달리기를 해야 할 땐 늘 러닝머신 위를 선호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퍼지고, 헬스장도 잠재적인 위험 장소가 되면서 어딘가를 열심히 달릴 일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던 것 같다. 애초부터 달렸던 적이 있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감각을 많이 잊었다.
이른 아침이니까 커피 도움을 좀 받아보려고 빠르게 아이스커피를 만들어서 한 잔 마시고, 가벼운 옷을 챙겨 입고, 에어팟에 스마트폰 하나만 챙겨서 나가는 길. 솔직히 옷 갈아입기 직전까지 나갈까 말까 고민 많이 했지만 일단 옷이 바뀌고 나면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무작정 집 근처를 달리기 시작하는데, 달리기는 정말 요가랑은 메커니즘이 좀 다른 것 같다. 요가나 스트레칭은 기본적으로 정적이고 고요한 운동이다 보니까 하다 보면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를 때가 많은데 달리기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러닝머신에서 뛸 때는 영상을 볼 수라도 있지 바깥을 달릴 땐 뭘 제대로 볼 여력도 없다. 사람이 정말 심플해지는 순간 같다고 생각했다.
새삼 이렇게 아무 생각 안 하고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한 것도 참 오랜만이네 싶었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 보면 얼핏 효율성이 좋은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마음의 순도가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집중력을 잃을 거리가 이렇게나 많은 시대에 살면서 누군가의 집중력을 잡아두는 것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도 없는 것 같다. 다른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순수하게 빠져들게 만들었다는 뜻이니까.
너무 복잡한 세상이어서 그런가, 점점 단순한 것들이 더 이상적으로 느껴진다.
좋아하는 걸 왜 좋아하는지 심플하게 설명할 수 있고,
좀 고단하게 느껴지는 일이지만 노력하고 애써야 하는 이유를 본인이 명확하게 알고,
한번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끝까지 가보는 단순함.
원래 늘상 애매모호한 것들이 많은 말을 필요로 한다.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하면 어떨까, 안 하면 또 어떨까, 다 좋은데 이게 문제야' 같은 변명 같고 핑계 같은 말들. 그런 것들을 많이 없애는 4개월을 보내고 싶다.
열심히 달려도 보고, 땀도 잔뜩 흘려보고, 깨끗하게 씻어 보내는 이상적인 가을 겨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