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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랑 Mar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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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이른 삼월 아침 유행이 다 지나

 이제는 마틸다의 방에 붙어 있는

 소울컴퍼니 포스터에나 그려진

 나이키 백포스 대신

 그녀는 하얀 슈퍼스타를 신고 카페에 앉아 있다.

 날씨는 이상하리만치 따뜻해서 학생들은 빛바랜 벨벳 스카쟌을 걸치고

 푸른 잔디 위를 걸어다닌다.

 연못 물은 감초록색으로 일렁거려 수면 위에 크리스털 같은 햇살이 빛난다.

 마틸다는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가장 질긴 개구리색 연잎 위에 폴짝 뛰어 내려앉고 싶은 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틸다는 본래 햇빛을 참 좋아하는 사람은 못 되어서

 또 그러한 감상은 잠시뿐이고

 달금하게 설탕 졸여지는 냄새  

 솜사탕 돌돌 말아 날리는 상인들이나

 하얀 꽃잎을 차마 다 토해내질 못하고 오물거리는 목련 봉오리에도

 눈길을 다 주지 못하고는

 카페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녀는 뿌연 유리창 밖으로 어떤 광경들을 지켜본다.

 그리고 마틸다가 꼭 모은 두 손 위에 포개져 있는

 밀크글라스.

 마틸다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밀크글라스.

 마틸다와 밀크글라스는 닮은 구석이 많다.

 차라리 그녀가 유리처럼 투명했다면.

 차라리 그녀가 플라스틱처럼 단단했더라면.

 마틸다의 이러저러한 공상이 비눗방울 터지듯 새초롬히 끝나버리고

 어느새 다가온 삼월처럼 그녀의 앞에 내가 다가가 앉는다.

 그래서 순간 무슨 일인지 마틸다는 자기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없게 되버린다.

 마틸다는 자신이 내키면 종알종알 산새처럼 말을 걸다가도

 무슨 영문인지 그런 생각이 들거나 하면 금방 또 꾹 하고 입을 다물어버린다.

 내가 입을 움직여 소리내 말해 본다.

 밀크글라스.

 마틸다는 악하게 태어났으나 내가 보아온 그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착한 소녀다.

 그러나 마틸다는 악마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다.

 그녀가 있는 곳은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니다.

 마틸다는 내 앞에 여기 밀크글라스를 쥐고

 두 눈은 꿈꾸는 것처럼 먼지 묻은 창문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가도 내 풀어헤친 셔츠 앞섶이 눈가에 스치면 참새처럼 움찔거리고

 아침마다 캡슐로 된 트라조돈을 삼킨다.

 마틸다는 사춘기 시절에 깨어있는 그녀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던 것은 세상의 관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보이지 않는 힘이

 찌그러지고 작아지고 오므라들어서

 그녀 손바닥 위의 희끄무레한 알약으로 남은 것이다.

 마틸다는 잠시 천국과 지옥과 악마와 천사는

 이미 세상에서 없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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