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진 Jan 18. 2018

1월, 제주의 겨울색

                                                                                                                                                                                                                                                                                                                                                                                                                                                                                                                               

올 겨울 최고의 한파가 왔던 날이었습니다.


덩달아 머리속에도 폭풍우가 마구 몰아치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겨울 바다 보러 가자.
매섭고 끈끈한 바다바람 싸대기를 맞다보면
정신차리기에 좋겠지.

누가 보면 잠깐 마실 나가나
할 만큼 작은 가방만 하나 들고
제주도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한여름 태풍이 몰아치던 날에도
경험하지 못한 난기류를 만나
기체가 상하로 1미터는 족히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탈수기에 들어앉아 탈탈 털리는 기분으로 50분을 견디고
그렇게 제주도에 도착하니

따뜻한 햇빛을 받은 돌무리와 야자수
계절을 모르는 꽃나무가 반깁니다.


낮기온 영상 10도.
제주도는 이미 봄이었습니다.

아니...
아직 겨울이 오지 않은 건지도

어쩌면...
오매불망 봄만을 기억하려고 드는지도 모르겠어요.

이곳의 어여쁨을 보려다
먼길을 떠나버린 영혼들을 기리는
수많은 노란색

상점마다 거리마다 가득하거든요.



제주의 4월 16일은

을 잔뜩 머금은 꽃망울이

터뜨려 세월을 반길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날 이후 10초 눈물연기가 가능해진 저는

기억하자. 잊지말자. 하는 말들이
오히려 잊혀지고 있음을 먼저 알아버린 것 같아
가슴이 애립니다.



꽃을 피우는 건 5월의 일이요
들야채를 키우고 열매를 영글게 하는 건
8월의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제주의 1월은 기특하게도
싹도 틔우고 꽃도 키우고
열매도 맺는,
실로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겨울이 한창인데
저 텃밭에 가득 담긴 초록빛이 가당키나 한가 싶어
아무곳에나 대고 마구 셔터를 눌러대다가


 


찬찬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둘러봅니다.

제철을 만난 생물처럼
신선하고 투명한 사람들의 눈동자들이
서로 부딫히면 와인잔 마냥 경쾌한 소리가 칭~
오랫동안 날 것만 같습니다






파도는 바다의 일이라는데


가끔은 그 일을 하늘에게 떠밀기도 하는지




쉴새없는 바람에 구름이 대신 파도를 일으키고

잔잔한 바다는 평화로운 풍경이 되어 사람들의 도화지가 됩니다.



교대로 폼을 잡는 연인들 앞에서


저 시절의 달달함이 마냥 부러운 김에

한 발짝씩 뒤로가다

마침내 여인의 발 한쪽이 물에 빠지는


혼자만 통쾌한 상상도 해봅니다.



눈 앞으로는 바다에 닿아있고

등 뒤는 산에 닿아 있는 넓은 평야입니다.


양 옆은 끝없이 넓게 펼쳐져 있어

자꾸 걸어가다보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확인할 것만 같은

신천목장.


그 위로 깔린 주황색 카펫은
색보다 먼저 냄새로
멀리서부터 존재를 알리는 귤피구요.

귤 수확이 끝난 직후에만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제주 1월의 이색풍경.
방향에 따라 색과 향이 달리보이는 귤피밭입니다.




정해진 때마다 방향을 바꾸는 바다의 자연풍과
온화한 햇빛이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지만

귤피를 건조시키는 데에는

수시로 뒤집어 주고
비오기 전에 걷었다 맑은 날 다시 널어주는
사람의 노고가 필요합니다.



저는 오늘
자연이 만든 감탄스러움 위에
사람의 노동으로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는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너무나 고마운 장면을 보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어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욕심마저
녹아내림을 느꼈습니다

손가락 끝을 움직이는 일만으로
좀 더 비싼 값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났었던 여자는 지금

힘든 일을 끝내고 퍼질러 앉아
시원한 바람과 포근한 빵을 섞어
우걱우걱 씹는 제주사람이 되는 상상을 합니다.




귤을 따고
과육을 발라내고
껍질을 정성스럽게 말리는 일.

그것이 쵸콜릿이 되고 귤차가 되고
화장품이 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도 행복할 것 같아

우리 여기서 한번 살아볼까?
새 아이에게 찬성을 구하는 눈빛으로 묻습니다.




엄마는 매일 새벽밥을 차려놓고 귤따러 나가야 될 거야.


우리도 같이 할게!!
맞아 우리도 귤 잘 따잖아
나는 예쁜 돌을 주워서 집 주변을 장식할거야
난 말을 키울거야
그럼 난 당근을 키울게!

가족 모두가 생업에 뛰어들면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겠다는 생각에 피식.

도시에서 학업을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이득이겠다 싶어

피식.





거칠고 거뭇한 손을 가진 부모아래서

노동의 댓가를 알고 자란 자식들은
삐뚫어지지도 않겠죠.


욕심껏 저축하지 않고
하루치의 보람과 땀으로 감사하며
오늘을 사는 아이들로 저절로 자랄겁니다.

                              

        

우리 정말 살아볼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바람이 많은 섬 제주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엄마의 허파에 제주바람만 잔뜩 들어가


이미 맘 속으론

이곳에서 살 집을 짓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라하를 걷다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