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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May 30. 2021

나 홀로 여행의 시작을 이탈리아로 결정한 이유

#1. 혼자 떠난 여행의 첫 도시, 피사

프라하의 대학교에는 부활절 기념 짧은 방학이 있다. 아마 대부분의 유럽이 그런 것 같다. 덕분에 4월 일주일을 통으로 쉬게 되었는데 월, 화 공강이었던 나는 9일간의 방학을 보낼 수 있었다. 날이 다가오면서 어디로 떠나야 하나 행복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혼자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다 보니 익숙한 곳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한번 가본 적이 있어 덜 낯선 독일이나 프랑스, 오스트리아가 낫겠다.' 그러다 문득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은데 굳이 다녀온 곳에 9일 황금 방학을 쓰는 것이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그럼 평소 가보고 싶어 했던 크로아티아로 할까? 요정들의 숲이라 불리는 플리트비체, 또 노래에도 자주 나오는 두브로브니크의 붉은 성벽과 푸른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내친김에 수영도 해야지.' 싶어 알아보니 4월인데 눈이 있었다는 후기에 여름을 기약하며 넘길 수밖에 없었다. 슬로베니아도 같은 이유로 탈락.


'순례길에 가기 위해 작년 블랙프라이데이 때 사두었던 등산화를 신을 때가 왔군' 스페인 100km 순례길을 걷고 돌아올 생각으로 예매하려 보니 부활절 기간이라 전 세계의 순례자들이 모일 거라는 소문을 들었다. 정말 비행기도 기차도 숙소도 모두 예약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남은 후보지는 이탈리아. 딱 하나가 걸렸다. 소매치기. 이거 말고는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또 이보다 더 괜찮은 후보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곧바로 예매를 마치고 계획을 세웠다.




이탈리아 여행 계획

1. 피사의 사탑이 얼마나 기울어졌는지 확인하기

2. 책에서 보았던 마나롤라 일몰 사진 장소 찾아가기

3. 피렌체에서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감상하기

4. 이탈리아에서 파스타 먹고 젤라또로 입가심하기

5. 이른 아침, 베니스 물길 따라 산책하기




떠나는 날, 기숙사를 나서는데 100m 달리기를 하고 난 후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마치 하면 안 될 행동을 한듯한 기분이었다. 설렘보다 긴장을 약간 더 한 상태로 걸음을 옮겼다.






이탈리아 여행의 첫 도시는 피사였다. 프라하에서 직항이 있는 이탈리아의 몇몇 도시를 검색할 때에는 낯선 이름에 넘겼던 도시였다. 검색을 하다 피사의 사탑이 있는 도시가 피사라는 걸 알게 된 후에는 여기다 싶었다. 구경을 하고 해안 마을로 넘어가기로 했다. 연착 없이 순조롭게 출발-.







이탈리아의 교통이 프라하와 크게 다르지 않아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어렵지 않게 교통권을 끊고 거리로 나섰다. 여유로운 척 미소를 지었지만 사실 마음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소매치기 범이 무서워 긴장한 상태였다. 역에서 나가기 전, 바깥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안쪽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었다. 어깨에 대충 두르고 다니던 카메라는 목에 걸었다. 가방은 자물쇠로 한번, 비는 오지 않지만 레인커버로 한번 더 보호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과한 방법이었지만)



골목을 걷다 저 멀리 피사의 사탑이 보였을 때의 순간이란. 비현실적인 풍경에 보면서도, 가까이 걸어가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그림 속에서나 보던 그 탑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니.

1. 피사의 사탑이 얼마나 기울어졌는지 확인하기

도착한 지 한 시간 만에 계획 하나를 이뤘다. 주변을 돌면서 눈으로 한번, 디지털카메라로 또 한 번, 필름 카메라로 다시 한번 담았다. 많은 사람들이 탑 앞에서 기울어진 탑을 받치는 듯한 인증샷을 찍고 있었는데 저마다 자세가 달라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잔디에 앉아 구경을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말을 걸었다. "혼자 여행 왔니?" 빠르게 살펴보니 본인 몸만 한 가방을 끌고 온 작은 친구였다. 그렇다고 하니 괜찮으면 같이 다니면서 서로 사진을 남겨보자고 했다. 그렇게 나도 재미있는 광경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평소 내 사진을 남기는 것보다 풍경을 찍는 걸 좋아해서, 그게 익숙해서 두세 컷 남기고 나오려는데 이왕 찍는 거 제대로 찍어야 한다며 몇십 장을 남겨주었다. 서로 만족스러운 사진 타임을 마치고 휴식을 가졌다. 앞으로의 일정이 어떻게 되냐며 저녁도 같이 놀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주었다. 아-기차표를 미리 끊는 게 아니었는데. 기차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쉽지만 서로의 여행을 응원하며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기차역에 가는 길, 평소처럼 이 도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풍경이 그려진 마그넷 하나를 샀다. 언니와 여행할 때에는 뭐가 더 예쁜지, 뭐를 고르는 게 나을지 끊임없이 물어보고 고민했었는데. 이번에는 사는 것까지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빠르게 결정을 내린 내가 신기했다. 전에는 색깔이 다양하게 들어간 마그넷이 좋았는데 여기서는 은색 동색으로 심플하게 조각된 마그넷이 더 눈에 들어왔다. 피사라고 쓰인 배경에 피사의 사탑이 길쭉하게 그려진 마그넷을 들고 기차에 올랐다.

햇살이 따스하게 들어왔던 창가 자리. 연둣빛 풍경이 계속해서 이어져 창밖만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앞을 보니 반대편에 앉으셨던 할머니가 씩 웃으셨다.


잠시 뒤 할머니는 가방과 의자를 가리키셨다.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다 그게 가방을 의자에 올려놓으라는 의미임을 알게 되었다. 발 앞에 가방을 놓고 있던 내가 불편해 보였나보다. 할머니는 가방을 의자로 옮겨도 된다고 그렇게 하라고 알려주시고는 내리셨다. 덕분에 편하게 해가 지는 걸 바라보며 라스페치아로 이동했다.  


시작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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