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7.
눈을 뜨니, 확실히 어제보단 컨디션이 나았다. 그래, 이렇게 정상화되는거지. 환기를 위해 문을 여니, 교도관이 문 앞에 음식과 약을 던져놓고 갔다. 그래, 격리는 오늘로 끝내자.
은영이 누나가 심심한 지영, 지우, 지아를 데리고 아웃렛으로 떠났고, 난 알아서 돌아다니겠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좋아. 오늘은 어제 실패한 예전 집을 제대로 한 번 찾아봐야지. 어젠 내비게이션 따라가다가 오히려 동서남북이 더 헷갈렸는데, 오늘은 내비게이션 따위에 기대지 말고, 오롯이 내 기억에 의존해보기로 했다.
믿을 걸 믿어야지. 근처 도착하자마자 또 헷갈렸다. 내가 그렇지 뭐. 도로에서 좌로 갈까 우로 갈까 망설이니 뒤에서 몇 번 빵빵거렸다. 그러다 북극성 지점을 발견했다. 자주 가던 Jack in the box가 보였다. 거기서 다시 시작했다. Jack in the box를 중심점으로 놓고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니, 나의 기억 세포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됐어~
20년 전 대학생때로 돌아가 차를 몰았고, 빙고! 드디어 찾았다. 내가 살던 곳. Dorothy Drive의 6214번 집이었구나. 그 집은 매형인 Frank형이 슈퍼에서 컵라면 하나를 사 듯, 아무 상의 없이 떡 하니 계약해서 샀던 집이었다. 내가 host 역할을 하며 학생 4명이 기숙사처럼 살았다. 집 앞에 서니, 웅장이 가슴해졌다. 에어컨 실외기가 추가된 것 빼고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여기서부턴 천하무적이지. 집 근처를 한 바퀴 돌았다.
길가에 차를 잠시 세워 놓았는데, 주차단속요원 차가 내 차 뒤에 서는 것을 확인하고 냅다 뛰어가서 차를 뺐다. 옆에 지나가던 SDSU 학생이 “nice timing”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워줬다. 이 친구 ENFP겠지. 한국으로 교환학생 오면 연락하세요.
호텔도 찾았고, 집도 찾았고, 컨디션도 돌아왔고, 오늘은 혼자 어딜 가볼까. 여행객 모드로 가볼 만한 곳을 찾다가 Old town으로 정했다. 샌디에이고 여행 명소로 손꼽히는 곳 중 내가 유일하게 안가 본 곳이었다. 내가 워낙 Young 한 사람이라 이름에 Old가 들어가 있으면 괜히 가기 싫었던 것 같다.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 여기가 디즈니랜드도 아니고. 햇살은 뜨거웠지만, 천천히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입구에 Ticket box가 있었는데, 무슨 티켓이지? 그냥 들어가도 되구먼.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여기서만 만 보를 찍을 태세로 걷고 또 걸었다. 기념품 가게들마다 들어가서 구경했고, 구매욕 없는 나지만 그나마 가장 사고 싶었던 것은 Old Town 이름에 어울리는 빈티지 지포 라이터였다. 담배도 안 피우는 사람이 이런 건 또 좋아한단 말이야. 영화 비트에서 정우성처럼 저거 손에 쥐고 펀치 날리면 딱이겠다 싶었지만, 사진 않았다. 난 지포 라이터 없어도 정우성 같으니.
저 멀리 Root beer 가게가 보였다. 이름에 Beer가 들어가지만 술이 아닌 저 녀석들을 내가 좀 애정하지. 한 때 저거 사려고 이태원 슈퍼마켓까지 찾아 갔었으니. 가게에 들어가서 가장 작은 Empire라는 이름의 root beer를 한 병 샀다. 탄산수에 박카스를 섞은 듯한 맛, 딱 나의 취향이었다. 나무 그늘 밑에서 Beer라 적혀 있는 병을 들고 나발 불고 있으니, 서부개척시대 카우보이가 된 기분이었다. 지포 라이터도 사서 딸깍거릴 걸 그랬다.
Old Town, 지영이랑 아이들을 다시 데리고 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혼자 여행기분도 내고 산책하며 컨디션 끌어올리기엔 제격인 곳이었다. 살며 또 오진 않겠지만, 안녕~. 많이 걸었으니 미국식 먹거리로 배를 좀 채우자. 내게 옵션이 몇 개 없긴 했다. 다시 Mira Mesa로 향했고, 오늘의 초이스는 In-N-Out이었다. 가족들은 아직 In-N-Out 개시도 못했는데, 나만 두 번 먹네.
여전히 실내에서 먹는게 부담스러운 사람으로서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링 거치대로 핸드폰을 세워놓고 유튜브를 보며 치즈버거를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있는데,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이 그 거치대 어디서 샀냐고 물었다. 이게 특이한 건가? 한국에서 샀다고 했더니, 한국 어디서 샀냐고 또 물었다. 한국 어디라고 말하면 네가 아니? 이거 사러 한국 가게? 너도 나중에 교환학생으로 한국 오면 연락해라. 내가 하나 사줄게.
그 때 링 거치대와 테이블이 격하게 드르르르 부딪치며 진동이 울렸다. 드디어 PCR 검사 결과가 문자로 도착했다. 한 번 보자~ 아, Negative. 그러면 그동안 코로나도 아닌데 그렇게 아팠다고? 더 쪽팔리네. 그냥 여행 좀 했다고 아픈 약골인거쟎아. 부끄럽습니다. 어쨌든 나 officially 코로나 아니니, 내일부터는 가족들과 합체하여 여행 다시 정상가동하기로 했다.
혼자였지만 나름 괜찮았던 하루, 그래도 오늘까진 잠은 혼자 격리 방으로. 철커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