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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gwon May 09. 2021

서른 셋의 첫 독립

독거중년으로 발전하는 중

5월 1일부터 나는 판교에 혼자 머물고 있다. 직장인 판교와 본가가 그렇게 멀지 않아 굳이 나와서 살 이유가 없었기에, 나의 독립소식을 들은 몇몇은 괜히 나와서 돈 쓰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결혼하기 전에 혼자 한 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컸고, 엄마의 자기도 방 좀 혼자 써보고 싶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나가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엄마 아빠는 우리가 태어난 이후로 혼자만의 방을 못 썼던 것이다. 서른 셋이나 먹고 그걸 깨달았다.


청량리에 위치한 대학교까지 등교하는데만 1시간 반이 걸렸던 나였지만, 굳이 자취를 하지 않았었기에 인생 첫 독립이었다. 그만큼 짐이 많았고, 또 막상 이사를 해놓고 보니 없는 것도 많았다. 요리의 ㅇ자도 몰랐던 나이기에, 요리를 하지 않고 밀키트나 뭐 그런 간편음식들로 버틸려고 했으나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아 제육볶음 먹고 싶다.. 시키기는 싫고 직접 해볼까? 하는 생각에 돼지고기와 몇 가지 사려고 집 근처 롯데마트를 들렸고, 생각보다 집에 요리를 위한 도구들이 없음을 깨달아버려 15만 원을 지르고 양손 무겁게 돌아왔다. 아니 첫 장보는 데 이런 거금을 쓰다니, 내가 무슨 금수저도 아니고 나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삶의 지속에 대해 근원적인 고민을 잠깐 가졌다.

요리를 시작한 순간, 백종원 아저씨가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가 말하는 대로 재료들을 넣어서 제육볶음을 완성해서 먹었고 뭐 나름대로 괜찮은 결과물이 나왔다. 그렇게 유튜브를 굳이 보지 않더라도, 해낼 수 있는 메뉴가 하나씩 증가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하고 느끼기도 한다. 생활공간을 거지처럼 쓰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집은 하루에 한 번씩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한다. 심심하면 매직스펀지에 물을 묻혀서 화장실 샤워부스와 벽 타일을 닦는다. 아무래도 주부가 내 적성인 것 같다. 물걸레질 하고 깨끗하진 바닥을 걸어다닐 때 그 느낌이 너무 좋다. 약간 변태가 되어 가는 듯.


아직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아, 더욱 유난을 떠는 것 같긴 하지만 아직까지 느낌은 좋다. 판교는 이상하게 예전부터 오면 기분이 좋고, 안정적인 느낌을 느꼈던 지역이기에 더욱 좋은 일들이 많아질 것 같다. 더욱 많은 행운이 이 집에서 생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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