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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n 02. 2019

나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자

 설겆이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움츠러들 필요 없잖아!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뭐가 부족해서?!'

 좀 더 힘차게 비눗칠을 하고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그릇을 행궈냈다. 그리고는 혼자서 블럭놀이를 하고 있는 아들 녀석에게 다가가 뜨거운 포옹을 선물했다. 보드랍고 말랑말랑한 아기 살결이 내 가슴팍에 묻혔다. 나는 살포시 아이의 얼굴에 볼을 포갰다.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나는 그 기분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타인에게는 관대하고, 나 자신에게는 엄격해지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주변에서 성장을 위한 조언이라고 전하기도 하고, 여러 책들에서 권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좌우명으로 삼으며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팍팍한 세상, 적어도 나 하나만큼은 지금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듬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자꾸 움츠러드는 나를 위해 남편은 누구보다 잘 하고 있다는 격려를 자주 했다. 괜한 우울감에 빠지지 말라는 응원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했다.

 '여보는 지금 충분히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는 중이야.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한 시기잖아.'

 남편의 위로에도 나는 끊임없이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되물었다. 남편에게 물었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아이가 또래보다 발달이 느리다는 소리를 듣거나 이유없는 투정이라도 부리는 날엔 더했다. 모든 것이 내 탓인것 같아서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매달 초, 가계부를 정리하며 계산기를 두드릴 때도 그랬다. 일하는 엄마가 되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게 더 나았을까 망설였다. 아이가 생기기 전, 열심히 회사생활을 하던 때를 떠올렸다. 


 내가 과연 잘 하고 있는 걸까.

 우리 가족은 지금 행복한 걸까.

 혹시 내가 전업주부라서, 우리집이 외벌이라서 남편이 더 힘든 것은 아닐까.

 하루하루 뒤쳐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경단녀가 되어버리면,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자신감은 결국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내 마음은 나에게 너그럽지 못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마음을 먹었다가도 금세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나의 걱정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조금 더 하찮게 만들었고, 볼품없어 보이게 만들었다. 내 아이와 보내고 있는 감사한 시간들이 사소해졌고 의미없이 소모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내 생활에 만족할 수 없게 되자 행복은 저 멀리로 사라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자존감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깔끔한 정장을 입고 아침마다 출근을 해야 사회생활을 하는 것일까. 하루종일 잠옷을 입고 아이와 뒹굴고 있으면 집에서 논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일까. 매달 통장에 찍히는 월급이 있어야 경제활동을 하는 것일까. 가계부를 정리하고 살림살이를 살피며 육아를 전담하는 주부는 그저 남편의 월급을 쓰는 사람일 뿐인걸까.

 엄격함의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나 스스로의 기준과 원칙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잣대가 필요했다. 내 인생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살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감과 자존감은 분명 다른 것이겠지만, 그 둘을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서 나눠보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보낸 시간,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신감은 결국 나에 대한 존중과 배려, 내가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그 모든 것들이 얽혀서 나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자존감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그 것은 내가 믿고 행하는 것들에 대한 확신이며, 나 자신에 대한 신뢰에 기반할 것이다.


 내 신념에 대한 확신이 있고,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탄탄하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그런 사람은 분명 본인의 행복을 찾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것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부끄러워 하는 것, 조바심 내고 걱정하는 것은 엄격함이 아니다. 그 것은 오히려 나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뒤로 잡아끄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나에게 조금 더 관대해 지기로 했다. 

 내가 보내는 시간, 나의 생각들이 충분히 의미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내가 지금의 선택을 하기까지 고민했던 시간들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칭찬받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내 행복이 아이에게 전해지도록 내게 주어진 시간을 감사하면서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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