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해줘서 고맙고... 이제 애기가 제법 잘 걷더라. 항상 옆에 꼭 붙어 다녀. 발발발 걷는 거 보니 니가 따라다닐라면 바쁘겠더라."
언젠가부터 아빠는 내 전화를 고마워했다. 손가락만 살짝 움직여 안부만 전한 것뿐인데 아빠는 그 짧은 시간에도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다. 그리고 어김없이 손주 걱정을 했다. 머리 두상이 봉긋한 것이 커서 한 자리 크게 할 놈이라며 흐뭇해하셨다. 혹여 나중에 큰 자리에 못 오르면 잘 낳아서 잘 못 키워낸 우리 탓일 거라며 농담을 던지시곤 허허 웃으셨다. 볼수록 영특하다며 좋아하셨다.
매일 영상통화를 하고 매달 한 두 번씩 우리 집을 찾으시는 시아버님과 우리 아빠는 달랐다. 시아버님은 혼자 지내는 적적한 저녁, 손주 보는 것 말고는 낙이 없다며 여러 번 말씀하셨다. 나는 그런 시아버님께 매일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드려야 했다. 사진이 조금이라도 늦는 날엔 왜 아직도 연락이 없냐며 찾으셨고, 사진만 보낸 날엔 왜 영상은 없냐고 타박을 하셨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영상통화를 하지 않은 날엔 어김없이 다음 날 아침부터 전화기가 울렸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유난스러운 시아버님 덕에 우리 아빠께도 매일 시윤이의 사진과 영상을 보내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시아버님과 다르게 우리 아빠는 그저 내 연락을 기다리기만 했다. 단 한 번도 왜 안 보내는지, 왜 늦었는지에 대한 물음은 없으셨다. 사진이 가던, 영상이 가던 아빠 핸드폰은 항상 묵묵부답이었다. 손주 영상이 그리워 하루 종일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시는 걸 뻔히 아는데도, 아빠는 한마디 말씀이 없으셨다. 이따금씩 카톡창에 잘못 눌러진 영어 알파벳이 한 두 개씩 뜨는 것. 그게 아빠가 보내는 유일한 피드백이다. 아빠는 내가 보내드린 아기 영상을 그저 돌려보고 또 돌려보실 뿐이었다.
영상통화도 아빠에게는 아직 어색할 뿐이다. 사용하고 계시는 폴더폰에다 큰 소리를 치는 걸 더 익숙해하셨다.
"시윤이, 외할아버지야! 시윤이, 대답해 봐. 응?"
"외할아버지야. 네~ 해봐 봐. 아빠, 아기가 방긋 웃고 있어요! 아빠 목소리 기억하나 봐요."
"그래?! 그럼 됐다. 고만 끊자. 아기 놀래겠다."
"스마트폰으로 전화받으시면 아기 얼굴도 보고 좋다니깐..."
"됐어 됐어. 매일 영상 오니까 바로 옆에 있는 것 같고 좋은데, 뭘 통화까지 해. 아빠는 지금도 너무 좋아."
아기가 부쩍 컸다고 한번 집에 오시라는 말에 아빠는 곧 가겠노라며 약속을 하셨지만, 끝내 좋아하는 손주를 보러 오시진 않으셨다. 그래, 그래야 우리 아빠지. 괜한 기대를 했던 나를 다시 한번 다독였다.
그런 우리 아빠가 요즘 들어 자꾸 그리워진다.
나이가 들면서 아빠가 더 그리워진다.
평생 편히 놀지도, 쉬지도, 그렇다고 마음껏 달려보지도 못했을 우리 아빠가 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자꾸 마음이 쓰인다. 이젠 어디로 여행을 가자고 해도 싫다 하시고, 좋은 것을 먹으러 가자고 해도 싫다 하시는 그분의 인생이 작은 1톤 트럭의 운전석에 갇혀 버린 것 아닌가 싶어 자꾸 가슴이 따끔거린다.
우리 아빠는 화물 트럭 운전을 하신다. 한 평도 되지 않는 운전석이 아빠에겐 가장 아늑한 안식처이고, 온전한 아빠만의 공간이다. 요즘 아빠는 그곳에 있는 것을 제일 좋아하시는 것 같다. 아니 그 공간이 제일 편한 공간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불 꺼진 텅 빈 집안에 들어가서 혼자 밥을 먹고 티브이를 보다 잠드는 일상, 그리고 또 혼자 눈뜨는 아침. 하지만 아빠의 1톤 트럭 운전석에서는 바뀌는 계절이 보이고 주변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 아빠의 운전석은 어두컴컴한 집보다 더 활기찬 곳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아빠는 당신의 트럭을 제외한 모든 교통수단은 이용하지 않으신다. 버스, 기차, 택시까지도. 심지어 우리가 태워드린다고 해도 싫다 하신다. 아무리 먼 거리도 아빠의 차로만 이동하시고, 혼자 타고 다니시는 것을 좋아하신다. 다른 곳에 가는 것도 불편해하신다. 그저 지금 계신 곳,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며 아침에 일어나 일하러 가시고, 저녁에 일찌감치 잠드는 일상을 반복하신다. 아빠에겐 똑같은 일상이 안정감을 줄지 모르지만 나는 그 속에 아빠가 갇혀버린 것만 같아서 자꾸 마음이 쓰였다.
한때는 아빠를 원망했던 적도 있었다. 다른 아빠들처럼 더 멋진 직업을 가지거나 더 강한 생활력으로 우리 가정을 일으켜 주었더라면 좋았겠다고 바랬다. 고집불통에 외통수인 아빠의 성격이 답답해 보였다. 아빠처럼 꽉 막힌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다.
그런데 막상 가정을 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아스라이 생각나는 사람은 아빠였다. 아빠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빠는 얼마나 깜깜한 시간을 버텨왔을까. 그래서 아빠의 마음은 얼마나 새까맣게 타버렸을까.
지나온 시간들을 더 많이 함께 하지 못해서 죄송했고, 그 시간 동안 아무 말도 없이 혼자서 버텨온 아빠가 바보 같아 보였다. 왜 아빠는 말씀이 없으실까. 하고 싶다, 보고 싶다, 먹고 싶다, 가고 싶다. 그런 말들을 하는 게 아빠에게는 왜 그리 힘든 것인지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아빠는 늘 내게 괜찮다고만 하셨다. 아플 때도, 다쳤을 때도, 힘들 때도, 보고 싶을 때도 말이다.
"아빠니까 괜찮아여. 아빠잖아~ 걱정 마."
지금 내 옆에는 두 남자가 잠들어 있다.
우리 아빠가 지나온 길을 곧 걷게 될 나의 남편과 훗날 누군가의 남편이 되고, 누군가의 아빠가 될 우리 아들. 잠든 두 남자를 바라보며 괜히 가슴이 뭉클해졌다가 또 화끈해졌다가 끝내 촉촉해진다. 잠든 남편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아기의 고사리 손을 살포시 잡아본다.
정말이지 오늘따라 우리 아빠가 참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