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랑 공룡 보러 가야 해서 쉽니다
남편이 가게에 안내문을 내걸었다. 다가올 9월부터는 수요일에 쉬겠다는 내용이었다. 장사를 시작한 지 6개월 남짓. 휴일은 일요일이었다가 월요일이었다가 수요일로 변경되었다. 변화무쌍한 휴일에도 휘둘리지 않고 가게를 찾아주시는 손님들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개업을 한 지 100일쯤 못 되었을 때, 남편은 배달을 시작했다. 배달 손님도 고려하고 가게 사정도 신경 써서 휴일을 월요일로 바꾸었다. 휴일의 북적거림을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나는 남편의 결정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때. 우리 부부는 별것 아닌 것이지만 월요일에 쉴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했다. 진정 이런 것이 자영업자가 누릴 수 있는 주체적인 삶이 아니겠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우리의 행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커가면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체험학습장을 많이 찾게 되는데 어쩜 하나같이 월요일이 휴무였던 것이다. 도서관은 물론, 작은 물놀이장도 월요일이 휴무였다. 식당은 또 어떠한가. 큰 맘먹고 찾아간 맛집은 문이 굳게 잠겨 있거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동네 조그마한 모노레일 조차도 월요일은 쉰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마음을 애태우게 한 것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공룡박물관'이었다.
공룡박물관은 우리 집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만 달리면 닿는 거리에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거리. 하지만 우리 가족은 공룡박물관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공룡박물관도 월요일이 휴무였다. 이쯤 되니 대체 왜 모두들 월요일에 쉬냐고 어디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 군데쯤은 안 쉴 법도 한데, 하나같이 월요일에 쉰다는 안내문이 내걸려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공룡을 찾고, 하루 종일 공룡 그림책과 공룡 영상을 보고 놀다가 공룡을 안고 잠드는 우리 아들에게 공룡박물관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게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녀석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월요일이 휴무만 아니었어도 벌써 서너 번은 더 갔을 텐데... 공룡박물관의 존재조차 모르는 녀석은 손바닥만 한 공룡 모형을 들고 거실에서 놀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그저 빙그레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꽤 오랫동안 기다려온 남편의 여름휴가가 다가왔다. 휴가의 컨셉은 'ONLY 공룡'이었다. 아이에게 하루 종일 엄마와 아빠, 그리고 공룡과 함께하는 시간을 선물했다. 멀리 떠나진 않았지만 우리 세 가족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누리며 시간을 보냈다. '우와~'하며 달려가는 녀석을 바라보며 우리도 웃었고, 까르르 넘어가는 녀석을 안고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뿌듯해했다. 마음이 꽈악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서 가게에 안내문을 내걸었다.
공룡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아들내미를 공룡박물관에 데리고 가야 해서 9월부터는 수요일에 쉬겠다는 내용이었다. 안내문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손님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고 한다. 왜 당장 8월부터 수요일에 쉬지 9월부터냐며 오히려 따져 물으셨다고 한다. '아들이랑 공룡박물관은 가줘야지~' 하시며 맞장구를 쳐 주셨다고도 했다.
저녁을 먹으며 남편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데 갑자기 눈물이 울컥 솟았다. 간신히 눈물을 삼켰다. 아들 녀석은 고기를 더 달라며 내 손을 잡아끌었고, 남편은 밥 먹다 웬 눈물바람인가 싶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너무 좋아서, 너무 행복해서,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 콧잔등이 시큰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다행히 청승맞게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겨우겨우 돌돌 말아 다시 집어넣었다. 오늘의 눈물은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 우리 아들이 공룡박물관을 시큰둥해 할 수도 있고, 아직은 모르는 수요일 휴무의 불편함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녀석이 좋아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그것을 함께 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것을.
시간이 지나 녀석이 누군가를 책임지게 될 가장이 될 때가 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네 아빠처럼 따뜻하고 멋진 남자가 되렴. 너희 아빠는 최고의 남편이고, 최고의 아빠였단다."
우리 아빠가 최고야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최윤정 옮김, 킨더랜드)
첫째와 태어나 처음으로 읽었던 그림책이다. 지금까지 수백 번은 더 읽었던 것 같다.
아이에게 아빠가 최고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읽을수록 우리 아빠가 생각나서 나 또한 자꾸 손이 갔던 그림책이다. 가끔 아빠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이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행복이 차오르는 기분이 든다.
아빠는 언제나 너를 사랑해 (한스 크리스티안 슈미트 글, 안드레아스 네메트 그림, 이상희 옮김, 크레용하우스)
매 페이지마다 지금 우리 가족의 모습인 것 같아 빙그레 웃음이 지어졌다. 티격태격하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사이인 남편과 아들을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건 그 자체로 내게 힐링이다. 두 남자가 소리치고 뒹구는 저녁놀이 시간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신다. 사소한 행복을 확인하고 싶다면 추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