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 커뮤니티
결혼하기 전, 남자의 외모를 많이 따지는 편은 아니었으나 보통 여자들이 그렇듯 준수한 외모에 훤칠한 키를 바랐던 적이 있다. 곧 그것이 지극한 나의 욕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애초에 조각 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과의 연애를 바라지는 않았으나 요즘 말로 외모도, 마음도 훈훈한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다. 인상 좋고, 마음씨도 좋은 그런 사람이 내 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 사실 이런 바람이야 누구든 가지고 살지 않은가.
스스로 눈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까지 훈훈한 사람을 찾으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하나가 좋으면, 하나가 아쉬운 상황들의 반복. 나의 연애사는 그렇게 조금은 만족스럽고, 또 조금은 아쉬운 흔적들을 남겼다.
사람을 만남에 있어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면이 가끔은 더 중요하다고 믿는 편이다. 물론 이런 나의 신념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기가 수월하지는 않았다. 첫눈에 마음을 주는 일이 쉽지 않았고, 이미 마음을 주었다가도 그 사람을 깊이 알아가면서 마음을 거두는 일들이 생겼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거리를 지나며 '저 남자 정말 괜찮다!'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어쩌면 누군가와의 만남이라는 것이 조심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20대의 나는 그렇게 살았다.
얼마 전,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가는데 반듯하게 생긴 청년을 보았다. 나는 버스에 앉아있었고, 그 청년은 내 앞에서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서있었다. 흰 티에 청바지, 깨끗한 운동화에 무심하게 걸친 가방이 그저 깔끔했고, 심지어 정갈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이는 20대 초중반. 일부러 훔쳐보려고 한 것은 아니나 초행길이라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보니 그 청년이 자연스레 내 눈에 몇 번 스쳤다. 첫 느낌이 좋은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왠지 좋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없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사람의 성품이 은연중에 외모에 묻어 나오게 된다는 말에는 동의하게 되었다. 물론 젊은 사람보다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그 말은 더 들어맞는 듯했다. 내 앞에 있는 청년은 젊은이이긴 했지만,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이 좋았다.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20대의 나였다면, 저런 사람과 한 번 만나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까. 물론 그때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눈길 한 번 주지 못하고 스쳐 지나쳤을 수도 있지만.
30대의 나는, 그 청년을 보면서 우리 아들이 나중에 저렇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성적으로 그 남자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기보다 반듯한 그 사람의 이미지가 우리 아들에게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제 갓 3등신을 넘어 4등신을 바라보는 우리 아들이 저렇게 훤칠하게 자라려면 얼마나 더 커야 할까. 내 손에 쏙 들어오는 오동통한 다리가 저만치 길어지려면 얼마나 많이 걷고, 또 얼마나 많이 뛰어야 할까.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녀석이 저런 멋진 청년이 되어 혼자 버스를 타고 일터로 나가게 되면 나는 어떤 느낌이 들까.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주책없는 엄마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흐뭇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10년 전의 나라면 호들갑을 떨며 오늘 버스에서 멋진 남자를 보았다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겠지.
오늘의 나는, 퇴근한 남편에게 오늘 버스에서 어떤 청년을 보았는데 우리 시윤이가 나중에 커서 그렇게 훈훈한 남자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며 말을 건넸다. 남편은 이제 아줌마가 다 되었다며, 주책이라고 놀렸지만 그런 핀잔이 왠지 싫지 않았다.
나쁜 의도는 없었으나 몇 번이고 실루엣을 훔쳐보게 된 그 청년에게 뒤늦게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 더불어 짧은 순간이나마 내 머릿속에서 우리 시윤이의 모델이 되어준 것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20년 뒤, 우리 아들이 버스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때에 다시 이 글을 꺼내어 읽어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태어나 처음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면 20년 뒤의 그때로 잠시 다녀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된다는 건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상하고 재밌는 일이 괜히 하고 싶어 지는 것. 현재의 내 모습보다 미래의 우리 가족의 모습이 더 많이 궁금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