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 커뮤니티
오매불망 시윤이가 뒤집기만을 기다렸던 며칠이 지났다. 얼떨결에 한 번 뒤집기에 성공한 시윤이는 이제 뒤집기 베테랑이 되었다. 몇 번의 발길질 후에야 겨우 한 번 정도 뒤집을 수 있던 녀석은 점차 성공확률을 높여갔다. 척하면 착! 이젠 다리만 들어 올려도 훌러덩 뒤집히는 탓에 오히려 의도하지 않게 한 바퀴를 구르지 않을지 걱정해야 할 수준이었다. 하루하루가 달랐고, 급기야는 반나절이 달랐다. 남편이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가 달랐다. 그렇게 시윤이의 시계는 그 어느 때보다 빨리 가고 있었다.
처음엔 아기가 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만 보아도 눈물을 글썽이며 좋아하던 나는 시윤이의 무한반복 뒤집기 시도에 조금씩 무뎌져 가고 있었다. 놀이매트 위에서 끝도 없이 뒤집는 녀석을 보며 으레 그러려니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마치 녀석에게 뒤집기는 세상 전부인 것처럼 보였다. 뒤집기를 위해 자고, 뒤집기를 위해 먹고, 뒤집기를 위해 잠시 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녀석에게 모든 뒤집기가 새롭고 처음인 것과는 달리 내게는 매번 똑같은 연습의 연속이자 익숙함의 반복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점심으로 삶은 옥수수를 먹으려고 냄비에 옥수수를 올렸다. 혼자서 아기를 보다 보면 점심을 차려 먹는 일이 쉽지 않았다. 떡이며 빵 같은 것으로 끼니를 때우기가 쉬웠다. 그래서 오늘의 점심 메뉴는 옥수수로 결정! 물을 올리고 옥수수를 퐁당 넣어놓고 나니 고소한 옥수수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여전히 뒤집기 연습 중인 시윤이 옆으로 와서 옥수수가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 그러고 한참이 지났다.
'옥수수는 얼마나 삶아야 하는 거지? 계란이랑 비슷한가?'
옥수수를 얼마나 삶아야 하는지를 몰랐던 나는 인터넷 블로그를 검색하다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옥수수는 훨씬 덜 삶아도 되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부엌에서 고소하다 못해 구수한 냄새가 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급한 마음에 화들짝 일어선 나는 부엌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바로 그때! 시윤이가 뒤집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지 급기야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몸을 구부정하게 일으켰던 나는 아주 잠시, 눈 깜짝할 사이 둘 사이에서 고민을 하였지만 이내 옥수수에게로 달려갔다. 칭얼거리던 시윤이는 그렇게 거실에 내버려졌다. 녀석의 작은 코는 빨개졌고, 두 눈엔 조그만 눈물이 맺혔다.
그 시간, 노란 알이 너무 익어서 다 터져버린 옥수수는 팔팔 끓는 냄비 속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얼른 불을 끄고 옥수수를 건져 올린 나는 거실에 누워있는 시윤이를 보았다. 자기보다 옥수수를 선택한 엄마를 쳐다보는 원망의 눈빛. 나는 순간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왜 그 순간 아이를 안아 올리지 않고, 부엌으로 뛰어왔을까.
"난 나쁜 엄마 인가 봐. ㅠㅠ 냄비에 옥수수를 바글바글 삶고 있었는데, 동시에 시윤이가 뒤집어서 엄청 찡찡대는 거야. 근데 난 옥수수한테 뛰어갔어. 앙~~~"
"ㅋㅋㅋㅋㅋ 위험하니까! ㅋㅋㅋㅋㅋ"
"아니. 옥수수알이 터질까 봐."
"옥수수는 위험해. 괜... 괜찮아요... ㅋㅋ"
"시윤이는 뒤집을 수 있지만, 옥수수는 못 뒤집으니깐... ㅠㅠ 하아..."
"시윤이가 옥수수보다 형아네. ㅋㅋㅋㅋ"
별것 아닌 것이라 넘길 수도 있지만, 괜히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이 남았다. 저녁에 잠든 시윤이의 얼굴 위로 옥수수에게 엄마를 빼앗긴 녀석의 아쉬운 표정이 겹쳐 보였다. 아이를 낳고 그 무엇도 아이보다 먼저인 적이 없었다. 설사 그것이 남편과 관련된 것이었다 하더라도 아직 말도 못 하고, 제 앞가림도 못하는 이 어린 것을 먼저 챙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한낱 옥수수에 그 자리를 내어주다니.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부쩍 시윤이에게 양해를 구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시윤아, 잠깐만. 엄마가 금방 갈게!"
"시윤아, 엄마가 이거 잠시만 하고 갈게."
좋게 생각하면 이제 녀석이 엄마를 기다려 줄 수 있는 때가 되었다고 볼 수 있으려나. 가만히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며 눈만 껌뻑이던 녀석이 제 몸을 움직여 뒤집기도 하고,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기도 하니 말이다. 세상 그 무엇보다 어리고 약했던 아이가 옥수수보다 형아가 되었다. 어느새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다. 그렇게 아이가 커가는 게 대견하면서도, 못내 아쉬워진다. 아이보다 다른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된 엄마의 변해가는 마음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다음에는 옥수수알이 다 터져 문드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두 팔 벌려 녀석을 먼저 안아주어야겠다. 엄마가 시윤이를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이야기 해주어야 겠다. 옥수수 따위는 비교할 수도 없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