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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콩 Jun 13. 2022

아파도 기댈 수 없는 외국인 노동자의 삶

 얼마 전 서핑하는 친구들과 가나엘 다녀왔다. 이번 가나 여행은 한마디로 “아픈 서핑 트립”이었다. 도착한 지 이틀째인가, 목이 따끔거려 오기 시작하더니 몸상태가 말을 듣지 않았다. 두 번째 서핑을 하고 온날인가, 너무 추워 으슬으슬해져 가지고 온 옷을 모두 껴입기 시작했다. 양말까지 모두 껴입고도 추워 밖에 담요를 요청하러 나갔더니, 나만 세상 겨울이었다. 반쯤 헐벗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나는 북극곰처럼 껴입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야 아프다는 걸 인지했다. 곧장 방에 들어가 파라세타몰 1000mg을 먹고 따듯한 차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서는 세상 발 빠른 의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외노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리곤 나는 하루 만에 40도에 육박하는 열을 잡아낼 수 있었다.


 가나 서쪽 마을 부슈아라는 마을에서 우린 6박을 했는데, 떠나는 날 친구 E의 상태가 좋지 않다. 아마 나와 A의 감기로 추정되는 것에 감염된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우리와 같은 증상인데, 계속 속이 안 좋단다. 병원엘 갔더니 병원에선 큰 소견 없음이란다. 식중독이 아닐까 생각도 해 봤다. 그리고 7시간의 대장정인 수도 아크라로 향했다. 아크라로 향하는 동안 E의 고통은 여전했다. 아크라에 도착한 그녀는 다시 병원을 가야겠다고 한다. 우리는 그녀의 증상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고, 식중독 혹은 스트레스로 인한 발병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병원 방문에서도 결국 별 소견 없음으로 나왔다. 다만 우리는 초음파나 CT촬영을 요청했는데, 들어주질 않는다. 기기가 없거나 작동하지 않는단다. 병원에서 안된다니 돌아갈 수밖에. 주말 늦은 저녁이라 갈 수 있는 병원 선택권도 많지가 않다. 이게 바로 아프리카다. 겉은 번지르르 해 보이나 사실 정말 필요한 때,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없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E는 돌아왔고,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다카르(세네갈의 수도)로 가 제일 큰 병원에 가기로 한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정밀검사가 필요하긴 한 것 같다. 그리고 새벽 6시. 일어나 보니 E와 A가 없다. 메시지를 보니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고 한다. 비행기는 놓친 셈이다. P와 나는 그 둘을 아크라에 남겨둔 채 다카르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 것이다. 그렇다고 남은 연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아있을 명분이 없다. 불안하고 쓸쓸한 마음을 뒤로한 채 우린 다카르로 향했다. 그들이 병원으로 돌아간 시각 새벽 5시. 병원에선 갖은 이유들로 지연을 시켰고, 결국 다른 검사기관에 보내어 초음파를 실시하기로 한다. 초음파 검사 시 필요한 용액(?) 같은걸 마시고 3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E는 그 거북함을 못 견뎌 다 토해내고 말았다. 하필이면 코로나 확진으로 메디컬센터에서 지낼 수 없다며 3시간의 시간을 병원에서 격리해야 한다며 돌아와 버려, 그 용액을 마시기 위해 다시 메디컬센터로 가야만 했다. 총 14시간이 지났을까, 우린 끝내 결과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결과는, “맹장 파열, 복막염 가능성”.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첫 번째 병원에서 한 번에 진단했더라면, 이렇게 심각한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화도 나고 너무 속상했다. 번지르르한 겉모습에 속아넘어간 우리는 다시한번 왜 아프리카에 왔는지 일깨워주는 순간이다. 그리고 맹장수술을 해본 사람으로서, 그렇게 아팠을 텐데 복통 정도로 치부했던 E를 보며 우리의 아픔에 취하는 행동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언젠가 다카르에서 아프던 날 조금 먼 빌에 있는 병원을 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대를 잡고서야 아차 싶었다. P는 절대 운전하지 말라며 기다리라고 데리러 오겠다 했지만 아픈 외국인 환자는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나도 모르게 운전을 시작하자마자 후회를 했다. 우리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하루빨리 나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다. 맹장이 파열이 되어도 복통이라며 자기의 짐을 싸고 있던 E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누구에게 기댈 수 있는 순간이어도 익숙하지 않은 맘에 홀로 하나하나 해결하려는 조금은 멍청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린 해외에 나오게 되면 특히, 혼자 있는 사람들을 더욱 챙겨주려 하나보다. 아파도 병원 가지 않고 밥 먹지 않으며 어린냥 피울 수 있었던 가족들 곁이 조금은 그리운 오늘이다. 아, 참고로, E는 무사히 수술받고 다카르로 복귀해 회복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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