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세네갈은 대다수의 무슬림들로 일부다처제이다. 주변 친구중에도 부일을 둘씩 두거나 본인이 아닌 다른 와이프를 둔 남편을 가진 친구가 있다. 그래서 이혼이라는것이 잘 없을줄 알았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을 보면 의외로 이혼한 친구들이 많았다. 나의 착각이었다. 생각보다 이곳의 여성들이 많은 일을 하고 높은 관직에도 차지하고있다. 물론 내가모르는 남녀차별이 또 잔재할지는 모르겠으나 내 주변의 친구들만해도 시청 고위관직에 있거나 기관장도 여성이고 꽤 많은 여성들이 관직에있는것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 당황스러웠던 것이 첫째엄마와 둘째엄마 셋째엄마를 자연스럽게 엄마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배다른 형제들도 진심으로써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 생소한 일이었다. 한 사례로 친구네 놀러가서 엄마라고 소개받고 한참을 수다떨고나니 친엄마가 여행에서 돌아오셨고 그 집은 둘째엄마의 친정이었던 것이었다. 친엄마와 둘째엄마 그리고 둘째엄마의 엄마까지 함께 밥을먹고 수다를 떨고있는 상황이 여간 당황스러운일이 아니었다. A라는 다른 친구의 남편에게는 둘째 와이프가 있다.
"A, 남편이 둘째 와이프가 있으면 너무 화가나지않아?? 나는 질투가나서 때려버릴것같아!!!"
"빈따, 그렇지않아. 질투? 물론 나지. 하지만 나에겐 어머니가 둘이있어. 나도 그렇게 자라왔고 그래서 크게 상관없어. 하지만 어떤여자들은 둘째 첫째부인이 머리뜯고 싸우기도 해"
"헉!!! 정말그런거야?"
"응 근데 나는 그렇게 자라왔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녀의 말에 나는 이들은 모두 첫째, 둘째부인 또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아이들 모두 아무렇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이들만의 문화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신념과 자라온 환경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들의 문화는 또 존중해 주어야 하기때문이었다. 잘못되었다고 말하는것이 나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을 뒤집어 놓을 반전적인 상황이 있었다. 얼마전 k씨로부터 집에 초대를 받았다. 그는 내가 만난 세네갈래중에 가장 부자였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나눔을 기다리고있었고 이미 많은 돈으로 큰돈을 벌어드리는것에 미련이 없었다. 그의 집은 네다섯개의 고급 살롱이 있었고 층별 살롱별로 모로칸, 아라빅 등 컨셉이 모두 달랐다. 그는 매해 해외여행을다니며 브라질, 미국, 중국, 홍콩,두바이, 아랍 등 매우 많은 나라를 여행했었다. 그의 여행이야기는 매우 호기졌다. 그의 와이프가 어디갔냐는 질문에 미국여행중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뒤늦게 그의 아들인 m군과 이야기를 나눈 결과 그는 와이프와 이혼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아들은 수도에서 어머니의 오빠 (혹은 남동생)과 지내다 부모님의 양육권 분쟁때문인지 지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이유로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이별을 고했고 친한 친구들과도 모두 이별해야했다. 그덕분에 왓츠앱으로만 안부를 주고받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었다.
"왜 지방으로 갑자기 오게된거야?"
"아빠가 결정한 일이야."
"야 그렇다고 여자친구랑 헤어지냐??너되게나빠!"
"나는 롱디 별로 안좋아해"
"야 가끔씩 다카가서 만나면되지!"
"아빠가 허락안해"
그의 표정과 말투에서 많은것을 체념한듯 했다. 한참뒤 우연히 주방에서 둘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조금 더 깊히 그에게 질문을 했다.
"어떤 이유로 여기오게된거야? 다시 수도로 가니?"
"아니 여기있을것같아. "
"엄마 언제오셔?"
"안와. "
"아... 혹시 이혼하신거야?"
" 응 꽤 됐어."
"그래서 슬프니?"
"뭐,그닥. 너도 알듯 부모가 이혼하면 아이들은 다 이런식이지 뭐."
"그럼 이혼하실땐 슬펐어? 울었어?"
"아니야 아.. 사실 그때 좀 울긴했어 슬펐거든"
이말을하며 눈에는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듯 눈이 그렁그렁하다. 프랑스문화를 받은탓인지 이 사회에서 이혼한 가정이나 일부다저체 가정에대한 시선이 문제가되거나 이상한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것은 시선이 이상하지 않다고하여 아이들이 상처를 받지 않는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아이는 만 열 다섯의 나이로 부모님의 문제로 여자친구와도 정든 친구와도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일을 사회의 시선이 괜찮다는 이유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 보지 못했던 나를 다시 되돌아본 시간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의 시선도 아이의 상처도 너무 큰 짐들이 많다. 사람일이라는게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곤 하나 아이의 상처를 조금 더 헤아려 줄 수있는 m군의 아버지 k씨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