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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콩 Sep 16. 2016

양들의 침묵

세네갈 무슬림들의 대 명절 "따바스키"

 옛날 옛적에 이브라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브라힘은 아이가 너무 갖고 싶어 신께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신은 그의 노력이 가상하여 아이를 내려주었다.
아이가 자라고 자라 어느 날 신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이를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 이브라힘은 아이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신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아이를 죽이려는 찬라, 천사들이 나타나 아이를 양으로 대신 바꾸었다고 한다.
신은 이브라힘의 사랑을 느끼고 그 양을 대신한 것에 대해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이후로 매년 따바스키엔 그것을 기리는 기념으로 양을 잡아먹고 의식을 치르는 명절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내 친구 파피스의 설명- 


 


 이번 따바스키는 몇몇의 친구들에게 초대를 받았다. 따바스키는 이슬람 종교의 가장 큰 명절로 양을 잡아먹고 의식을 치른다. 올해는 우리나라의 추석과 날짜가 비슷하게 되어 외롭지 않은 양국의 명절을 보낼 수 있었다. 많은 초대중 내가 선택한 집은 얼마 전 글을 썼던 앞집 아줌마의 집이었다. 많은 명절이 그렇듯 아침부터 양을 잡고 오후 내내 여자들은 요리를 한다. 기도를 드리고 저녁엔 또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닌다. 한국의 설전에 해 입는 설빔처럼 그 명절에 맞추어 옷을 새로 입고 인사를 드리러 가는 것이다. 나 또한 그 대열에 발맞추어 아침에 아줌마 댁으로 향했다. 살아있는 양을 죽이는 모습을 보기에는 내 심장이 콩알만 해져서 반 고의적으로 조금 늦은 시각에 아줌마 댁으로 갔다. 다행히(?)양들은 이미 모두 침묵한 상태였고 다들 발골하느라 분주했다. 

큰아들 작은아들들이 양 발골하는 모습 

온 길거리에는 양발골중으로 핏물이 가득한 웅덩이가 여기저기 만연했다. 함께한 미미투레는 못 보겠다며 내 손을 꼭 붙잡고 땅만 바라보며 집으로 겨우 들어갔다. 2층 창가에서 지켜보는 우리를 보며 아줌마는 어여 아래층에 내려가 발골된 고기들을 위층으로 가져오라는 주문을 하셨다. 한참을 미적거리며 못하겠다며 징징 대던 우리는 아줌마의 호통에 양 끌려가듯 아래층으로 향했다.

의도치 않은 연인샷, 미미투레를 끌고가기 위해 현관문앞에서 용감함을 찾는중. 
길거리에서 각 가정마다 양을 발골하는 중 

무서움도 잠시, 결국 양이 아닌 고기로써 시선을 바꾸고 나니 신이 난다. 이렇게 사람이 잔인해지나 보다. 어릴 때 처음 요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소고기조차 못 썰던 나였다. 내 살을 자르는 것 같다며 징징대며 요리 못하겠다고 하던 14살의 내 모습이 떠오르며 만감이 교차된다. 

이내 채소들을 다듬고 우리는 숯불에 간을 굽기 시작했다. 갓 잡은 양의 간의 맛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쫀득하고 맛있었다. 한국에서 순대나 이런 것들을 먹을 때 퍽퍽한 식감이 싫어 간을 잘 먹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잡아 간을 숯불에 구웠더니 퍽퍽한 느낌도 비린맛도 없이 매우 고소했다. 그렇게 우리는 요리 준비를 하며 양갈비와 양간을 해치워버렸다. 배가 부른데도 자꾸만 입속에 들어가는 양고기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간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오이와 토마토만 씹었던 날들을 떠올렸지만 이 양고기들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조금도 비리지 않았고 조금도 냄새가 나지 않았다. 숯가루가 묻은지도 모른 채 열심히 갈비를 뜯고 나니 졸음이 쏠려와 두어 시간 잠들었던 것 같다. 


 오후 5시경 아줌마, 아저씨는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다시 저녁 준비를 했다. 6시경 식사를 하곤 샤워하고 새로운 저녁 맞이를 준비했다. 이곳의 명절은 항상 옷을 두벌을 준비하거나 한벌을 준비하더라도 저녁을 위한 옷이다. 지난번 꼬리떼(라마단의 마지막 날) 때도 저녁을 위한 옷이었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후 동네의 친인척, 어르신, 친구들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또 혹은, 파티를 가거나 축제에 참여하기도 한다. 아줌마의 큰 아들이 함께 바닷가에 춤추러 갈 것을 권했으나 밤 11시 넘어서야 시작될 파티에 너무 늦어 함께할 수 없었다. (사실 정말 배가 쓰리도록 아쉽고 또 아쉬웠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내년엔....!!) 


 지난번 말했듯 두 분 사이에는 자녀가 없다. 두 분 다 재결합한 가정이시다. 두 분 사이에 아이가 없는 것에 대해 많이 아쉬우셨나 보다. 그래서 내가 


"두 분 사이에는 딸이 있잖아요!"


"아니 없어..."


"내가 있잖아요! 두 분의 딸!"


"하하 맞아 맞아, 네가 우리의 딸이야!"


엄마들은 딸들을 예쁘게 꾸며주는 재미가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예전에 내가 대학갈때 쯤, 엄마가 화장품을 사주고 엄마가 모아둔 액세서리들을 내게 물려주던 날을 기억한다.(물론 너무 많이 잃어버려서... 금이었는데...) 그 기억에 엄마 생각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아줌마는 엄청 큰 화장품 파우치를 가져오더니 화장을 고쳐주곤 악세사리 박스를 가져오더니 내 옷에 어울리는 악세사리들을 올려주셨다. 내가 다시 쟈스와 쥬르벨로 여행을 간다고 했더니 이 악세사리들은 가서 착용하라 하셨다. 내 딸은 누구보다 빛이 나야한다며. 하지만 늦은 밤 귀갓길 위험할까 걱정돼 놓고 간다고 했더니 조금 더 저렴한 아이들로(하지만 무엇보다 빛이 났던) 선물이라며 팔지, 귀걸이, 반지를 내게 주셨다. 그 마음이 너무나 따듯하고 든든했다. 아줌마의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친인척께도 문안인사를 드리곤 그렇게 명절을 마무리 지었다. 사실 이쁘게 화장하고 이쁘게 입고서 아쉬운 마음에 샤를리라는 외국인들이 많이 가는 바에 갔더니 명절이라 문을 닫았더랬다. 결국 귀가해 진토닉 한잔과 함께 밤을 마무리했다. 




**사진 : 미미투레 













글쓴이. 김은빈

직업. 영감님처럼 동네 시찰 나가기

부업. 세네갈의 작은 마을 께베메르에서 아이들 요리교육을 하며 지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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