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러 마트에 갔다가 예상보다 오래 돌아다닌 탓에 기운이 빠진 나는, 엄마가 물건들을 계산하는 동안 잠시 계산대 옆 벤치에 앉아 쉬었다. 삑- 삑- 연달아 바코드 찍는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시선을 던진 곳엔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늦은 밤이라 타는 사람 없이 왼쪽 손잡이와 오른쪽 손잡이가 평행을 이루며 한 곳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였다. 저 두 선은 영원히 만날 일이 없겠네. 생각했다. 머릿속에 한 점에서 만나는 두 직선을 떠올렸다. 두 선이 교차한다는 건 아마도 놀라운 사건이 될 수 있겠구나. 그런데, 두 직선이 한 점에서 만나면 뭐 해. 이후론 영원히 다른 곳을 향하지 않나? 흐트러진 시선을 다시 에스컬레이터로, 끊임없이 평행을 이루는 왼쪽과 오른쪽 손잡이로 고정했다. 한 번 만나 영원히 엇갈리는 것과 가까운 곳에서 영원히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 1도만 틀어져도 시간이 지나면 우주적인 차이로 영영 틀어지고 마는 두 직선보다는, 한 뼘의 거리를 인정하며 함께하는 하나의 평행선이야말로 대단한 것 아닐까. 또 생각했다. 대개 평행을 끝없이 좁히지 못하는 부정적인 무엇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평행한다는 건 영원히 접점이 없는 게 아니라, 어쩌면 영원히 동행하는 상태 자체일지 모른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평행에서 기대되는 점 하나. 평행선이 무럭무럭 자라나 지경을 넓힌 면이 되면- 두 선이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결국 ‘교차면’이 생기고 말 테니까. 그거야말로 엄청난 일이고 감격적인 일일 거야.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던 중 어느덧 계산을 끝마친 엄마가 내 이름을 불렀다. 우리는 가득 찬 카트를 밀며 나란히 빈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