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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빈 Nov 13. 2023

겨울

성급하게 어둑해진 거리와 찬 공기로 인해 유난히 깊고 투명해서 고요하게 느껴지는 하늘. 오후 여섯 시쯤 지났을까.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직 실내 온기가 남은 코끝을 차갑게 휘젓는 바람이 괜스레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이따금 여민 옷가지 틈 사이로 바람이 사무치듯 파고들면 내 몸이 또렷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조금은 외로운 듯 시린 겨울의 이 느낌이 좋다. 그런 생각으로 걷는 중에 노란 불빛이 비치는 카페의 유리창 너머로 머그잔을 손으로 감싼 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 그 건너 김이 모락모락 나는 포장마차 앞에 나란히 서서 종이컵을 호호 불며 입에 가져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런 풍경이 그 어느 때보다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지금뿐이겠지. 모든 계절이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만 겨울만큼 인생을 보여주는 계절도 없을 거라고 여기며, 나는 겨울이 좋은 이유들을 찾아 헤아렸다.


숨이 보이는 계절. 따뜻한 온도가 고픈 계절. 그만큼 작은 온기가 잘 느껴지는 계절. 땅이든 하늘이든 빛나는 것들이 유독 더 반짝반짝하게 보이는 계절. 벌거벗었지만 가장 단단한 나무를 볼 수 있는 계절.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유일한 계절. 때로 혹독한 만큼 옆을 보게 하고 함께 앞을 바라보게 만드는 계절. 멈춘 듯 보이지만 가장 성실하게 다음을 준비하는 계절. 그리고 무리해서라도 자꾸만 걷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계절.


집에 가까워질 수록 느려지는 발걸음에 내 손끝은 에는 듯 차가워져 갔다. 그만 들어가야 한다고 알리는 몸의 신호가 야속했다. 막 입동이 지났겠다. 이제 시작이니 천천히 겨울을 만끽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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