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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빈 Jan 05. 2024

비범한 건 다름 아닌

다정하고 따뜻한 인사가 오가는 이맘때. 주고받은 안부 사이로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한 친구의 말에 ‘평범한 게 비범한 것’이라고 한 스스로의 대답이 마음 한구석에서 맴돈다. 사실은 비범함—평범한 비범함이든 진짜 비범함이든—을 너무도 사모한 사람이 나라서.


새해가 밝은 뒤로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삶이 중요한 이유를 곱씹다 보니 그 반대 격인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죽고 싶었던 적이 없다. 삶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 왔을 때 도망치고 싶은 적이 종종 있었지만 그건 단순히 죽고 싶은 ‘심정’이었을 뿐 정말로 목숨을 버릴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죽을 때가 되어 죽더라도 자발적으로 죽음을 찾으면 안 된다는 생각.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 견뎌야 한다는 생각. 도망가지 마. 삶이 본능인걸.


그러나 죽음을 원한 적 없던 내게도 그 본능이 희미해진 때가 있었다. 죽음으로 몸을 던지지는 않았지만 무기력했고 삶에 미련이 없었다. 오늘 죽는다 해도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눈이 뜨이니까 하루를 살고 배가 고프니까 밥을 먹는.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잠을 잘 때였다. 잠은 죽음과 닮았다지. 잠들었다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깬다거나, 이대로 영원히 잠들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던 것 같다.


어차피 저는 천국에 갈 거라 확신하는데요, 주님. 그냥 천국에 데려다주세요. 천국에 가고 싶어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교회 밖을 나가자마자 사고로 죽는 게 가장 행복한 죽음이라는 기독교식 유머가 떠올랐다. 그래, 그것 참 행복한 죽음인데. 거듭나 사는 고통 없이 믿자마자 바로 천국에 간다니 얼마나 복된 인생인가.


대학교 동아리에서 알게 된 한 선배는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동안 시편을 들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을 때’라는 말을 곧잘 하곤 했다. 아, 이게 바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는 느낌 아닐까. 아무렇지 않게 영위하던 삶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몸이 아프면 그때 비로소 오장육부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곤 한다. 위가 꿈틀대면 위가 정확히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선명하게 알게 되는 것처럼. 잘 작동하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것이 삐걱대면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삶이 이렇게 낯설고 확실하게 느껴진 적이 있던가. 이건 삶이 고장 난 건가.


어둠 속을 헤매는 동안 내가 참 해맑고 그늘 없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았다. 어수룩해 빠진 바보. 부끄럽기까지 했다. 이전에는 이해할 수 없던 사람들과 대화와 환경과 내가 마땅히 감사로 여기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깨닫기 시작했다. 또 내가 굉장히 욕심 많은 사람이라는 것도. 나는 그 누구보다도 속물이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잘 산다는 게 도대체 뭘까. 좋은 집에 살고 좋은 학교와 직장을 다니며 좋은 관계를 맺고 좋은 물건들을 소유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건강을 유지하며 사는 것?


“잘 되게 해 주세요.”


무심결에 갖고 있던 그 기준들이 어디서 왔을까. 삶의 가치가 정말 그런 기준들로 정해지는 걸까. 아니야. 말하기엔 이미. 그럼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순간엔 뭐가 되는가. 아예 기준을 없애버리면 남는 건 뭘까. 그저 존재하는 것. 이전에 졸업작품으로 존재 자체가 의미 있다고 주창했었는데, 진짜 존재만 해도 괜찮을까. 숨만 쉬어도 괜찮을까요. 나는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떠들던 말에 시험당하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치열하게 앓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멈춘 채 그냥 지냈다. 시간을 흘리고 보내버렸다.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헷갈릴 만큼 똑같은 어제와 오늘에 ‘열심히’ 같은 건 없었다. 생산성도 없고 이룬 것도 없고 의미도 잘 모르겠는 하루들. 그런데 반복되는 나날 그 끝에 닿게 된 답은 사랑이었고, 다시 삶이었다.


내가 믿는 믿음. 순전히 사랑해서 할 수 있는 신뢰. 매일 조용하게 베풂 받는 일상과 사랑을 말해주는 배려. 깊은 대화. 소소한 웃음. 작은 귀여움. 빛나는 아름다움. 불안을 잠재우는 약속. 찾아온 평안. 기쁨.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았다. 겨우 숨만 붙어있는 것 같았던 나는 조금씩, 조금씩, 그 사랑으로 삶에 소망을 찾을 수 있었다. 속절없이 무너진대도 다시 세울 수 있다는 용기 또한 함께.


“잘 지내?”

“그냥 평범하게 살아.”


특색이 없다 말하는 삶도, 드라마같이 우여곡절 있는 삶도 모두 살고 있음 자체가 대견스러운 것 아닐까. 순진무구한 생각이라 하더라도 비범한 건 다름 아닌 삶 자체다. 삶이 거창하다. 일어나기 싫어 침대에서 꾸물거리고, 잠긴 눈으로 양치질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계절의 바람을 느끼고, 두 발로 땅을 딛고, 피곤하게 일하고, 마음을 나눌 누군가를 만나고, 아프고, 한심할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간절히 기도를 하고, 오늘은 뭘 먹을까 고민하는, 평범해 마지않는 이 하루들이. 사랑으로 여기 있고 사랑으로 내일을 향해 갈 수 있다. 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변화들은 더없는 기적일 테지.




모두들 사랑 안에, 평범하고도 비범한 삶 지켜가는 새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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