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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뭐라고 소개하나요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면

by 박나옹

자존감이 낮았던 나는 어렸을 적부터 자기소개하기가 가장 어렵고 괴로웠다.


회사를 다니면서 나를 소개하는 것은 아주 간단해졌다.

'어디 회사의 박 아무개 팀장입니다.'

조금 알려진 회사를 다닌 덕분에 필요한 경우 어느 부서에서 근무한다 정도만 추가로 이야기해도 내 설명은 끝이 났다. (예전에 아무도 모르는 스타트업에 근무한 적이 잠깐 있었는데, 그때는 회사의 정체부터 설명해야 했다.) 결혼 전에도 동창모임이나, 취미활동 모임이나, 소개팅에서도 회사원 또는 어디 회사 다닌다는 정도만 이야기하면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경우가 많았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으니 명료하고 편했다.


학생일 땐 어디 학교 몇 학년 학생 박 아무개.

회사원일 땐 어느 회사의 팀장 박 아무개.


나이가 들고 아이를 갖고 나서는 회사를 다니는 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스스로의 위기의식이 생겼다. 정년퇴직은 60세 정도이지만 40,50세 대상으로 권고사직을 날리기도 하고, 우리 회사는 밑에서 일하는 사람은 여자가 태반인데, 관리감독은 거의 남자이기 때문에 더욱 한계를 체감하는 면도 있다. 어렸을 적엔 마흔까지만 회사를 다녀도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덧 마흔하고 중반이 되도록 버텨내고 있다. 이 나이가 되어보니 마흔은 여전히 어리고 이후에 삶도 길다.

언제고 회사 명찰을 뗄 텐데 그 이후에 나의 소개에는 무엇이 남을까. 벌써부터 빈털터리가 된 기분이다.

성인 이후로 계속 어딘가에 소속되었던 나로서는 사회적으로 소속이 없어진다는 것 역시 꽤 불안한 일이다. 더 이상 회사원이 아니라면 그저 서울 살고, 나이 먹은 여자 말고 나는 뭘로 더 설명할 수 있을까.


브런치스토리를 발행할 때, 첫 질문에서 나를 소개하라는 부분이 있었는데 참 막막했다.

브런치스토리에서 듣고 싶은 내 소개가 무엇일지 감이 안 왔다.

난 앞으로 무엇으로 설명될까.



*메인 사진: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극 중 주인공의 나르시시즘을 보여주는 명함 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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