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사람의 구성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절반은 할머니로 이루어져 있고, 나머지도 그녀의 정성이 들어가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자애롭다. 그녀는 갓난아기인 나를 받아 길렀다. 덕분에 태어나서 삼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녀는 나에게 온 세계였다. 무엇하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다. 할머니는 열여섯에 결혼해 칠순을 지날 때까지 육아에 매진했다. 자식 일곱 명과 손녀딸까지 거뜬히 길러냈다. 힘들 법도 하지만,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다.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
할머니는 모두에게 해가 없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한 그녀는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집으로 택배가 오면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애잔하다며 용돈을 주시곤 한다. 받지 않으면 우유라도 한 잔 꼭 따라서 드린다. 어려서는 우리 집 근처 길거리에 노숙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녀는 그분들을 만나면 지갑에 있는 현금을 모두 줘버렸다. 어떤 날에는 몇만 원이었는데, 어떤 날에는 몇천 원밖에 없었다. 몽땅 주고도 미안해했다. 그들은 할머니를 보면 늘 건강히 지내라고 부탁했다. 숨어있던 길고양이도 할머니를 보고 나와 반가워했다. 그런 덕에 그녀 주변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 잘하고 있을 때나, 잘하고 싶은데 못할 때나, 쉽게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모두 게워내었을 때 남는 해가 없는 사랑. 그러면서도 진심이 느껴지는 사랑이다.
할머니가 매력적인 이유는 본인을 뻔뻔하리만큼 사랑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의 한마디에 상처 입는 나와 다르다. 그녀의 높은 자존감 덕택에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음이 났다. 남자 친구와의 잦은 싸움에 이별을 고민하고 있을 때이다.
" 할머니, 어떻게 하면 후회 없는 선택을 할까?"
" 글쎄…. 나는 한 번도 차여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
그녀는 곤란하다는 듯 머쓱하게 말했다.
본인은 사랑만 받고 살아서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할머니는 미움보다는 받은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고모들에게 안부 전화가 올 때면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으셨다. 나는 준 것을 기억하고, 할머니는 받은 것을 기억했다. 같은 상황에서도 해석이 정반대였다. 그래서 그녀의 일상 속에는 넉넉한 품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 품을 좋아한다. 흔하고 낡은 상투어에도 오롯한 진심을 느끼게 된다.
작년에 할머니와 인순이 디너쇼를 보았다. 사람들은 자꾸만 나에게 손녀딸이 할머니를 모시고 왔다며 극찬을 쏟아냈다. 호텔로 가는 택시 아저씨도 호텔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아저씨도 그렇게 말했다. 마음이 불편했다. 상황이 반대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할머니가 함께 와주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 용기를 내주어 고마웠다. 그녀가 더욱 칭찬받을 일 아닐까? 할머니는 사람들이 부러워서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외로워진다고 했다. 사람이 찾아오는 날에는 그토록 기쁘지만, 아무도 찾아주지 않으면 그렇게 외롭다고 했다.
인순이 디너쇼에서 할머니는 크게 만족하였다. 중간에 인순이는 열정적인 모습으로 테이블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때로는 무대에서 내려와 관중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녔다. 할머니 앞을 지나갔는데 그녀를 발견하였는지 다시 돌아와 안아주었다. 할머니는 인순이가 지나치지 않고 안아주었다며 족히 열 번은 감격하였다. 그날 이후, 한참 동안 그녀는 인순이가 나오는 방송을 챙겨보았다. 본인은 인순이를 직접 보고, 안아보기도 하였으니 남이 아니라고 했다. 그녀가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나는 자꾸자꾸 묻는다. 내가 물으면 그녀는 대답한다. 지나간 순간도 여러 번 행복하게 된다는 걸 그녀를 통해 처음 배웠다. 그녀의 행복을 온 힘을 다해서라도 지켜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