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파프리카
23:35 출발한 기차는 긴 밤을 달리고 있었다. 객차마다 배치된 승무원이 꼼꼼히 승차권과 여권을 확인하며 몇 번이고 사진과 나를 비교하며 갸우뚱거렸다. ‘내가 볼 때는 참 선해 보이는 인상인데 왜 그럴까?’
모스크바와 다르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럽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숙소를 찾아 걷고 있을 때, 등 뒤로 태양이 떠올랐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곧바로 숙소로 가지 않고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사 들고 근처 광장으로 향했다. 때마침 건널목을 지나는 사람들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왔고 그 순간을 담기 위해 그들보다 반 박자 늦게 움직였다. 반 박자 늦은 리듬도 나쁘지 않았다.
넓은 광장에는 한두 명의 사람만 보일 뿐, 다소 한적했다. ‘쿵’ 하며 분위기를 깨는 소리가 들렸고 광장 구석진 곳에서 자전거를 타던 청년이 넘어진 듯 보였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 청년은 다시 일어나 자전거에 올라 천천히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나는 웃고 말았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무언가를 얻기 위해 넘어지고 상처받는 일쯤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청년을 향해 웃었으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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