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도 햇살 Aug 18. 2023

아니 눈썹도 맘대로 못하냐고

마취크림을 발랐을 때 걸려온 전화한통

  얼마 전 후배를 만났는데, 미용에 많은 관심을 쏟고있는걸 알게되어 놀랐다. 항상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사람 만나는것을 좋아해 내 연락에 항상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해주는 그녀. 이야기하다보면 항상 삶의 '알쓸신잡'이 쏟아져 나온다.


  오늘의 이야기는 중년 여성들의 대화답게 자연스럽게 미용으로 흘렀는데, 나이들수록 얼굴 인상을 결정짓는 눈썹 시술이 필요하다는데 입을 모으고 좋은 시술소가 있으면 같이 가자는 데까지 이르렀다.


'예쁜 눈썹 연예인'을 검색하니 나오는 사진. 눈썹도 이쁘신 분.


  그런데 알쓸신잡의 그녀답게 눈썹이야말로 병원에서 시술해야 한다며 갑자기 유명하다는 강남의 병원을  알려주는게 아닌가. 뿐만 아니라 예약상황이 궁금하다며 전화를 해보더니 마침 오늘 오후에 당장 자리가 비었다며 눈앞에서 '눈썹 2명 시술'을 어레인지했다.


"오후에 다른일 없으시죠? 그럼 저랑 제 차로 지금 가시죠."


  너무 급작스러웠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지만 휴일이었고 남편도 상가집 간다고 했고, 안 갈 이유가 딱히 없었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무려 눈썹 시술을 위해 집에서 먼 강남 모 의원까지 가게 되었다.


  그곳은 병원보다는 매우 분업화된 전문 시술소 느낌이었고 구역도 잘 나누어져 있어 무슨 눈썹시술 공장 같았다. 진료대기, 상담, 사진촬영, 마취크림바르고 대기, 시술상담, 시술 등등. 성실히 그 프로세스에 임하고 있는데 상가집에 간다는 남편이 전화가 왔다.


  "어디야? 둘째가 코로나 검사 양성이래! 코가 많이 막혔길래 검사해보라고 했는데 두줄 나왔어."




  헉. 하필 이 멀리까지 와서 마취크림 바르고 있는 타이밍에. 코로나 검사를 두시간만 빨리 할것이지..얼마 전 우리 가족은 모두 두번째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둘째아이만 빼고. 멀쩡하던 아이가 얼마전부터 감기기운이 있어 며칠 전에도 집에서 자가진단키트를 찔러봤으나 음성이었는데, 오늘 다시 해보니 양성이 나온거다.


  시술하시는 분에게 빨리빨리 해달라고 했지만 시간을 많이 앞당길수는 없었고, 그러다가 눈썹이 짝짝이가 될까봐 내심 걱정이 되었다. 둘째는 작년에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열이 약간 오르다가 증세가 없어져서 이번에도 많이 아플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오늘이 공휴일이어서 병원에 가기 힘들다는게 문제였다.


  나는 화끈거리는 눈썹을 참으며 동네 병원 몇 군데에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휴진이었다. 좀 멀긴하지만 휴일에도 여는 병원을 알고 있으니 거기에 데리고 가야겠다. 거기도 시술 마치고 집에 가면 이미 문을 닫은 후가 아닐까. 어휴, 안되면 집에 감기약이라도 찾아서 우선 먹여야겠네.


  전전긍긍하는 사이에 시간은 지났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남편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아니 애가 코로나 확진이라는데 당장 오지 않고 뭐하느냐고. 성질 급한 인간답게 잔뜩 화가 나 있었다. 회사 상사 부친상인데 가서 인사만 드리고 오는 길이며, 휴일에 여는 병원을 찾아 애를 데리고 가겠다며 필요 이상으로 격양돼 있었다.


  왠지 오래 구박받다가 만에  약점을 발견하고 의기양양해하는 듯한 이 느낌은 뭐지. 그래, 누구라도 병원에 데리고 가면 되지. 그런데 평생 안하던 눈썹을 하는 날에 하필 애가 코로나람. 바람잔날 없는 내가 왠일로 '강남의 잘하는 병원'까지 찾아가 속편하게 이런 호사를 누리나 했네. 역시 하던 일을 하면 안되나 .




  둘째 아이는 다행히 큰 증상 없이 현재까지 평화롭게 코로나 격리생활을 즐기고 있다. 개학을 맞이했음에도 학교에도 학원에도 가지 않고 유튜브 정주행 중이다. 슬슬 학교에 가고싶은데 친구들이 반겨하지 않을것 같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그리고 시술 직후의 내 눈썹은 너무 시꺼매서 짱구 눈썹이 따로 없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신경이 쓰이고, 더운 여름에 세수를 못하니 불편하다. 며칠 지나자연스러워진다니 이래저래 시간이 빨리 기를 바라고 있다.




현재 이런 느낌





  사족. 병원에서 눈썹 반영구 시술이라니 . 알고 보니 이 시술은 원래 의료인만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다 불법이라 한다. 아, 그러고 보니 정치인 누군가가 타투 캠페인을 했던 것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합법적인 터치를 받은 나의 눈썹이 내일은 좀더 아름다워지기를 기대한다.



작가의 이전글 전국 잼버리, 중학생 아이들에게 불똥이 튄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