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학생 해외 배낭여행이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다. 나도 대학생 시절에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었다. 프랑스와 독일, 스위스, 영국 등 유럽의 주요 국가 위주로 한 달 반 정도 배낭을 메고 다니는 여행이었는데, 당시 한국의 대학생 눈에 비친 유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국적인 자연 풍광과 문화유적도 놀라웠지만, 길거리와 관광지에서 풍겨나오는 자유와 풍요로움이 경이로웠다.
여러 나라를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고속 열차와 야외 테이블에서 자유롭게 음식을 먹는 담대함, 아무렇지도 않게 잔디밭에 앉아 일광욕하는 사람들, 체형에 구애받지 않고 개성을 살린 옷차림, 그리고 우리집 안방만큼 깨끗한 대중화장실 등. 당시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획일화가 심하고 규범이 엄격한 분위기였기에 유럽의 자유로운 문화 그 자체에 매혹됐던 기억이 난다.
20여년 전, 유럽에 가서 느꼈던 사소한 '컬쳐 쇼크' 중의 몇 가지.
1. 음식을 길거리에서 먹는다.
심지어 가게 안에서 먹을 때와 테이크아웃의 비용이 다르다. 테이크아웃이 더 저렴하다.
Out과 In 가격이 다른 메뉴판. 출처 네이버 검색
이들은 서비스 별도의 문화이니, 테이크아웃을 하는 것은 식당에서 만드는 음식값만 청구하는 거겠지. 매우 합리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식당은 음식을 파는 곳이니 그곳에 가는 것은 음식을 먹으려고 가는 것인데, 나가서 먹는다는 변수를 굳이 생각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예전 우리나라에서는 길거리에서 뭔가를 먹는 사람은 부랑자에 준하는 취급을 받았다. 음료수를 들고 어슬렁어슬렁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마시다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게에서 사서 들고 집에 들어가서 먹어야 했다. 음식은 반드시 실내에서, 그리고 한 자리에 앉아서, 또한 말하지 말고 조용히 먹는 것이었다. 음식을 먹으며 대화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2. 잔디밭에 들어가서 앉는다. 심지어 돗자리를 펴고 드러눕기까지 한다.
잔디는 보호해야 하는 것. 연약한 잔디에 사람이 들어가서 밟고 돌아다니고 앉기라도 하면 불쌍한 잔디가 다 죽는다! 따라서 야외에 소풍을 가도 잔디밭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기껏해야 보도블록와 잔디밭 사이의 턱에 돗자리를 펴고 앉는 정도였다. 그것도 잔디 쪽으로 돗자리가 많이 넘어가면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1994년 용산공원 잔디밭
2023년 한 잔디밭
지금은 잔디밭에 들어가고, 앉고, 걷는 일이 얼마나 당연한지.
3. 옷차림이 매우 자유스럽다
유럽 여성들은 화장을 하지 않는 것 같았고, 유럽으로 여행 온 동양 여성들만 화장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서양인들은 우리나라 여성보다 몸집이 큰데도 매우 거리낌없이 옷을 입었다. 노출은 물론이고 색깔이나 옷의 크기와 종류도 매우 다양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압도적으로 리드하는 패션 트렌드가 있고, 모두가 거기에 맞춰서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와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대학가에 폴로 셔츠가 유행하면 열에 여덞아홉은 폴로 셔츠를 입었으니까.
1996년 라네즈 립스틱. 이름은 '천년후애'
저 립스틱이 대 유행하던 시절. 립스틱을 바르는 거의 모든(?) 20대 여성이 저 카키색깔 립스틱을 바르고 다녔던 시절도 있었다... 장난하냐고 할수도 있지만, 정말 그랬다. (나도 그랬다..... 나 여름 쿨톤인데....)
얼마 전, 20여년 만에 다시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젊은 시절 특히 인상 깊었던 여행지에 가족들과 함께 방문하여 당시에 매혹되었던 몇몇 도시를 다시 찾고 자녀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다.
그런데 유럽은 여전히 아름다웠으나, 당시 개도국이던 대학생 눈에 비쳤던 경이로운 곳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새 우리나라의 생활수준이 유럽과 비슷해진 거다. 나는 더 이상 개도국의 대학생이 아닌 국민소득 3만불 국가에서 온 관광객이었다.
아이들은 TV와 유튜브에서 보던 관광 명소와 궁전 등을 실제로 대하는 것에 즐거워했지만 선진 문물에 대한 신기함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문화적 충격이 그리 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인 면까지 발견했다. 일찍 가게가 문을 닫아 밤에 물건을 구입하기 어려울 뿐더러 인터넷 속도가 늦다는 것에 불편해 했으며, 소매치기가 많아 소지품을 함부로 두지 못해 불안해했다. 오히려 유럽보다도 우리나라가 훨씬 편하고 지내기 좋은 곳이라 했다. 내가 대학생 시절에 놀랐던 문화적인 자유로움과 풍요는 우리나라에 이미 보편화되어 아이들은 당연하게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의 노천 카페. 네이버 검색)
- 이젠 이런 노천 카페를 한국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도 비슷한 곳이 있다.
내가 학교다닐 때 수없이 들은 것처럼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지금은 3만불 국민소득이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1990년대만 해도 1만불대에 머물렀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에 내가 미국과 일본의 노래와 영화를 보고 매혹된 것처럼 전세계가 지금은 우리나라의 드라마와 노래를 보고 들으며 우리 문화에 열광하고 있다. ‘일본 가전’, ‘프랑스 화장품’, ‘독일 자동차’에 높은 지위를 부여했듯이.
그리고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는 'K-팝'으로 외국인들과 소통하는 것이 당연하고, 또한 K-컬처가 전세계로부터 '추앙'받는 것이 매우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개도국에서 태어난 나와는 달리 우리 아이들은 생활 수준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선진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인 거다.
파행을 빚은 잼버리 참가자들에게 위로의 카드가 된 것도 K-팝이었다.
우리나라는 MZ세대, X세대, 베이비붐 세대 등 여러 세대가 뒤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후진국과 선진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까지도 함께 거주하고 있는 셈이었다. 단일민족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그 태어나고 자란 배경과 경험이 판이한 사람들이다. 후진국에서 온 내가 선진국 시민인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비전을 보여주고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기성세대인 우리가 MZ세대다, 알파세대 등으로 이름붙여지는 후배들과는 어떻게 해야 제대로 공존할 수 있을까. 20여년 만의 유럽여행을 통해 깨닫게 된 생각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