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도 햇살 Jul 24. 2023

한글을 못 읽는 2학년에게 담임선생님이 했던 일

교사가 마음껏 헌신할 수 있던 시대가 그립다

  최근 한 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선택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임용된지 얼마 안된 20대 중반, 순수와 열의로 가득한 시기의 젊은 교사라니 더욱더 마음이 아프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자기 꿈을 제대로 시작해 보지도 못하고 사그라든 것이 인생 선배로서, 학부모로서 더욱 안쓰럽다.    




  교사라는 직업은 기본적으로 아이를 좋아하고 올바르게 성장시키고자 하는 꿈이 있어야 가질 수 있는 직업이다. 우리 엄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는데, 굉장히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스타일이셨다.


  벌써 몇십년 전 일이다. 그 해에 엄마는 2학년 담임이셨다. 반 아이 중에 한글을 쓰고 읽기가 제대로 안되는 아이가 있었는데, 엄마는 그 아이를 여름방학 동안 우리집에 데려와 특별 지도를 하셨다. 집이 넓지 않았기 때문에 공간도 마땅치않아 밥상을 펴고 엄마와 그 아이가 마주앉아 가르치는 형태였다.


  그런데 옆에서 보기에도 그 아이는 그냥 한글을 잘 모르는 정도가 아니었다. 간단한 글자도 잘 못 읽을 뿐만 아니라, 태도와 역량에 전체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선생님과 단둘이 마주 앉았는데도 5분을 제대로 앉아있지 못하고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고, 책이나 공책에 주의를 기울이기는커녕 입에 뭐가 달린 것처럼 계속 다른 얘기를 해 댔다.


  지금 생각하니 ADHD 증상이 아니었을까 하는데, 당시는 그런 인식이 없던 때라 그냥 '집중 안하고 엄청 나대는 아이' 로 보였다. 분명히 교실에서는 그 아이로 인해 학습분위기가 엉망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학교 선생님이던 엄마를 좀 멋있어했는데, 그런 아이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한글을 가르치는 엄마를 보니 처음으로 안됐다는 마음이 들었다.


  거기다가 방학이란 수업을 안하는 시기인데 한글을 못 읽는다고 굳이 집으로 불러서까지 가르치는 것이 동거 가족인 나로서는 불편하고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학생이라 방학 때는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는데, 평소에 조용하던 우리집이 그 아이로 인해 소란해지는 것도 짜증이 났다. 그래서 엄마에게 내 불만사항을 이야기했다. 엄마의 반응은 이러하셨다.


 "아니야, 지금 가르쳐야 된다. 3학년이 되면 문장이 훨씬 길고 어려워지고, 국어 뿐 아니라 다른 과목도 확 어려워진다고. 지금 한글도 익히지 못하면 영영 못 따라갈수도 있어."


  엄마의 대답이 너무 단호해서 투덜댔던 내가 무안할 정도였다. 담임선생님의 사명감으로 그 아이는 여름방학 동안 몇번이나 우리집에 와서 한글 읽기쓰기 특훈을 받았고, 개학할 즈음에는 방학 초기보다 좀더 잘 읽고 더 오래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 것 같기도 했다. 덕분에 2학기에는 교사인 엄마도 학생인 그 아이와 반 친구들도 한결 수월하게 학교생활을 했다며 엄마는 뿌듯해하셨다.


  엄마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과 만족도가 높았고, 졸업한 후에도 자신을 찾아오는 학생들을 보며 보람을 많이 느끼셨다. 딸인 내게도 선생님이 될 것을 기대하셨는데, 나는 진로에 대해 고민했었지만 아이들에게 그렇게 잘해줄 자신도 능력도 없어 다른 직업을 택했다.






 아이를 키우며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부형을 거치면서 학교와 학부모의 달라진 분위기를 알게 된다. 여러 이야기가 들려올 때면 선생님이 될 뻔했던 나는 가끔 옛 일을 떠올린다. 요즘 시대에 방학에 아이를 집으로 불러 공부를 따로 가르친다면 어떨까. 아마 아이 학원 스케줄이 많으니 알아서 하겠다고 할 것 같다. 활발한 아이를 억지로 앉혀 강압적으로 한글을 가르치다니 아동학대라고 민원을 넣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한 아이에게만 특혜를 준다고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항의가 들어올 수도 있다.


  연일 교권 침해 사례가 보도되며 교사들의 어려움이 알려지고 있다. 학생들에 대한 교사들의 헌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학생들일 것이다. 이참에 교사의 순수한 열정이 아이들의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교사들이 교육현장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찾아내기를 기대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