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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햇살 Jul 29. 2023

이유없이 자꾸 아이가 쓰러진다

미주신경성 실신 아이를 대하는 엄마의 안타까움


  퇴근길인데 아이가 학원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연락이 왔다. 온라인으로라도 수업에 들어오라고 한다. 불안한 생각에 황급히 집에 도착해 보니, 거실 소파 앞에서 인기척이 난다. 아이가 소파에 누워있던 것도 아니고 소파 앞에 앉아있는데, 내가 와도 일어서지도 않고 기대어 앉아있다.



  "생리통인 것 같아서 약을 먹으려고 했는데 그 이후에는 기억이 잘 안나. 집에 온 이후에 기억이 없어."


  다행히 바닥에 꽈당 쓰러지지는 않고 소파에 기대어 있었던 모양새였다. 아이를 만져 보니 폭염 특보가 내린 이 날씨에도 손발이 차갑고, 손가락이 쪼그라들어 손이 펴지지가 않는다. 아이를 부축해서 침대로 데려가 눕히고, 타이레놀을 먹이고 물도 먹였다. 음료수가 있길래 그것도 조금 먹였다. 병원에선 평소에도 물을 많이 먹이라고 했으니까.


  "일어서려고 했는데 안 되고 손마디가 펴지지 않고 자꾸 쪼그라들어.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어깨가 위로 올라가서 안내려와. 소리도 잘 안 들렸고, 그냥 기억이 없어.


  6학년 때 학교에서 쓰러지던 때랑 비슷해. 머리 이쪽이 맞은것처럼 아파, 여기만. 그새 시간이 이렇게 지났네."


  몇마디 하다가 조용해진 걸 보니 잠이 들었다. 설마 저게 기절 상태는 아니겠지. 응급실에 가야 하나. 겁이 덜컥 났지만, 혈액 순환이 잘 되어야 할 테니 직관적으로 발 밑에 베개를 괴어 다리를 높이고 찜질 패드도 배에 대 주고 상태를 살폈다. 조금 지나 손발이 따뜻해진 것을 보니 괜찮아진 것 같다. 휴, 한시름 돌린 기분이다.






  작년에 아이가 학교에서 제대로 쓰러져서, 대학병원에 아예 입원해서 정밀 검사를 여러 가지 했다. 중간에 뇌수술 어쩌고 하는 소견이 나왔기에 나와 남편의 혼이 빠질 뻔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뇌에도 심장에도 이상은 없었다. '미주 신경성 실신'이 병명이다.


  실신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미주신경성 실신은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이 균형이 맞지 않아 혈류가 뇌 쪽으로 공급이 되지 않아 생겨난다고 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자율신경 조절이 잘 안된다는 것이고, 그래서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 뇌에 피를 보내지 못해서 뇌가 일을 잘 할수 없게 되어 신체가 쓰러진다는 거다. 어린시절 운동장 애국조회 시간에 교장선생님 말씀이 너무 길면 한두 아이들이 쓰러지는 증상이 이런 거였나 싶다.



  미주신경성 실신은 특별한 예방할 방법이 없고, 굳이 찾는다면 규칙적인 생활, 균형잡힌 식습관, 스트레스 안 받는 삶 등이 필요하다. 아, 그리고 혈액순환을 위해 물을 충분히 마셔야 한다. 쓰러지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쓰러지면서 몸이 어딘가에 부딪쳐서 다치는 것이 큰 문제다. 아무 데서나 의식을 잃으니 가슴이나 머리를 뾰족한 데에 부딪히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쓰러지는 것은 예방하기 어렵지만, 쓰러질 때는 최대한 머리나 가슴을 부딪치지 않게 잘 쓰러져야 한다. 그래서 실신의 전조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발목을 붙잡고 머리를 숙이고 그자리에 주저앉는 연습을 많이 했다. 아까 바닥에 기절해 있지 않고 소파 앞에 기대앉아 있는 것도 그런 훈련에서 나온 결과물인 것 같다.






   실신 증상이 꽤나 자주 나타난다. 한번은 학원에서 애가 어지러워 하니 보호자가 데리러 와달라고 연락이 온 적도 있다. 이런 일이 있으면 걱정이 많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엄살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그러다가 오늘처럼 빈 집에서 혼자 쓰러져 있으면, 이렇게 평생 자꾸만 쓰러지지는 않을까 염려가 많이 된다.


  생각해보면 큰 스트레스가 닥치거나 이례적인 상황에서 실신을 하는 것 같다. 예전에 가장 크게 실신했을 때는 학교에서 회장 선거를 치른 직후였고,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생리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런 크고작은 이벤트마다 꼭꼭 챙겨서 실신을 하게되면 시끄러운 일 많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그리고 양육자로서, 해결할 수 없다고 해서 쓰러지면 잠만 계속 재우고 손놓고 있어야만 하나..?



  도대체 얘가 오늘 밥이나 먹었는지 모르겠다. 입이 짧은 아이니 분명히 방학 중에 챙겨 주는 사람 고 귀찮아서 식사도 제대로 안 했겠지. 모든 병의 근원은 부실한 식단에서 나온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리고 이럴때 등장하는 게 내가 자신있게 끓이는 특제 쇠고기 미역국이다. 두 시간 정도 재우고 나서, 밤중이지만 일부러 깨워서 밥을 먹였다.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이 균형을 안 맞는 건 왜 그러는지 모르겠고, 밥을 잘 안 먹으면 쓰러지는거야.


또 쓰러지면 그때부턴 하루에 밥을 다섯끼씩 먹일거야, 알겠지? 이 미역국 끝까지 다 먹어라."



  내 예상이 맞았는지, 아이는 자다가 일어났는데도 왠일로 아주 맛있게 밥을 먹어치웠다. 미역국도 더 달라고 하고,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그리고는 기력을 되찾아, 잠든 동안에 계속 울렸던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려는지 핸드폰을 들고 들어갔다. 예방할 수도 치료할수도 없는 미주신경성 실신이지만 내가 한 음식으로 낫게 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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