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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햇살 Aug 29. 2023

선생님이 쓰러지셨는데 울음이 안나와요

INTP 엄마는 평생 공감력 학습 중


  요즘 사람들은 자의 성격과 태도를 'MBTI'의 잣대로 진단하곤 한다. 어렸을 때 혈액형, 별자리에 따른 유형을 구분했듯이 최근에는 MBTI로 자기 자신을 진단하여 16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 모양이다. MBTI 진단에 따르면 나의 성격유형은 INTP다.


  INTP의 특성은 자발적 아웃사이더. 자기세계에 빠져있고 내향적이며 타인과의 공감대 형성이 매우 어렵다는 거다.


  거기다 유교걸 집안에, 장녀 콤플렉스까지 합쳐지면 공감대보다는 무관심, 문제 해결 혹은 견디기 등으로 성향이 더욱 공고해진다.


방탄소년단 진, 에이핑크 정은지. 대표적 INTP 연예인이라고.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한다. 담임선생님이 수업시간 중에 교실에서 갑자기 쓰러지셨다. 나이가 많고 키가 매우 크신 남자선생님이셨는데, 교단에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갑자기 옆으로 쓰러져 버리셨다. 처음에 우리는 장난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고, 옆 교실에서 젊은 선생님이 달려와 우리 선생님을 업고 달려나갔다. 우리들은 혼돈에 빠졌다.


 몇몇 여자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는데 그게 반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러다가 여자애들 전체가 흐느껴 울게 되었고, 남자애들은 울지는 않았지만 차마 뛰어다닐 수는 없었는지 다들 자리에는 앉아 있었다. 다른 반 선생님이 오가며 괜찮다, 그럴 일이 아니라고 하셨지만 우리들은 계속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몇 시간이나 계속 울었다.


 


  그런데 나는 울음이 나지 않았고, 오히려 반 전체가 이렇게 슬퍼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분위기상 같이 슬퍼하고 울어보려고 했는데 한 시간이 넘어가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울다 보면 점점 더 격렬해지는 것인지 주변 아이들은 아예 발을 동동 구르고 외마디 소리를 외치는 등 우는 도가 높아졌지만 나는 울음 자체가 나오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하교시간도 아닌데 집에 갈 수도 없고 남자애들과 농담을 하기도 마땅찮고 이 상황에 계속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이게 참 뭐 하는가 싶었다. 그래서 울지 않으면서 눈에 띄지 않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조용히 교과서를 펼쳤다.



  하교시간이 되었다. 옆반 선생님이 오셔서, 우리 선생님은 병원에 가셨고 깨어나서 안정을 취하고 계신다, 찾아가면 안되니 어느 병원인지 알려주지 않겠다,회복되면 나오실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평소처럼 집으로 가라고 햇다. 나는 집에 갈 준비를 했는데, 반 아이들이 집에 가지 않고 남아있는 거다. 이제는 울음을 그치고 이 상황에 대해 흥분하면서 말이다. 나도 일단 남기는 했다. 그러다가 한참 후 곧 학교가 문닫을 시간이 다가왔기에 흥분한 아이들을 뒤로 하고 집으로 갔다.



   우리 선생님을 좋아했선생님 걱정을 안한게 절대 아니었다. 집으로 오는 중에도 선생님이 걱정되어 가슴이 쿵쾅거렸다. 하지만 선생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는 분이고 갑자기 쓰러지신 것이니 이렇게 놀라서 다같이 울기만 하는걸 알면 더욱 미안해하고 당황하실 것 같았다. 그러니 이럴수록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평소대로 하는게 맞는 것 같았다. 게다가 선생님은 덩치가 매우 크신 분이었는데 워낙 체육도 잘하시고 식사도 잘하고 쾌활 튼튼한 분이라 별일 아니겠지 하고 애써 생각을 돌렸다. 


  그러나 모두가 흐느끼는 그 상황에 나 혼자 책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눈에 띄었던 모양으로, 나중에 독하다, 이기적이라는 뒷담을 들었다. 거기다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학교를 나와서 학원까지 갔다는 소문이 져서 한동안 구설수에 올랐다. 요즘처럼 SNS가 발달했던 시대라면 비난이 담긴 DM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나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내가 다른 친구들을 울지 못하게 한 것도 아니고 웃거나 장난쳐서 눈에 띌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옆에서 우는지 아닌지 살펴가면서 운다는 말인가.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왜 욕을 먹지. 그들도 결국 슬픔에 몰입했던 게 아니었던게 아닌가. 그리고 그야말로 울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을 꺼냈다 뿐이지, 그렇다고 공부를 한 것도 딱히 아니었다.


  하여간 나는 그 일로 남들이 다같이 슬퍼하는 일에는 비슷하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야 욕을 먹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내가 속한 무리가 슬퍼할 일이 생기면 눈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동참하는 티를 내게 되었다. 굳이 안좋은 소리를 들으면서 공감이 안되는 티를 내고 싶지는 않으니까. 많은 사람이 기뻐하는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정말 어려운 것이 바로 이 '공감'이다. TV와 유튜브에서는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으면 부모에게 원인을 찾고, 아이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데서 잘못을 찾는 육아관이 대세를 이룬다. 가뜩이나 공감력을 기르고 싶었던 나는 공감 기반의 육아법을 전격 수용했다. 마음이 가는것은 금방 배워내는 것이 INTP의 특성이기도 하다. 유아기와 아동기의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지켜 자존감높은 사람으로 키우고자 아이들 관점에서 상황을 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아이가 청소년기에 들어서며 여러 일들이 생기니, 내지르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나올 때 이걸 뱉아내야 할지 '우웅, 그랬어~?' 해야 하는지 더욱 헷갈린다.  공감을 자제하고 단호박을 앞세우면 쉬워보이는 일이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다. 아이의 상황에 오버랩해보며 공감력을 키우고자 애쓰고는 있지만, 타고난 재능이 아니니 '노오력'이 많이 필요하다. 내가 INTP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공감하기에 노력이 들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일반적인 어머니들도 나만큼 공감력을 키우려 애쓰는 것인지 때때로 매우 궁금하다.





사족. 다른 사람의 일에 쉽게 공감하지도, 내 일에 대한 공감을 남에게 구하지도 않는 것이야말로 INTP의 특성이라고들 한다.




사족 두번째.


  당시 담임선생님께서는 다다음날 출근하셨다. 너무 빨리 나오셔서 우린 오히려 좀 당황스러웠지만 다들 안심했다. 그리고 그날 하루는 우리 반이 모두 얌전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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