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에 흔들리지 않을 무게감
크루즈 크기에 따라 적게는 500명 많게는 2000명의 승무원들이 선내 Cabin에서 기숙생활을 한다.
승객들은 출입할 수 없는 승무원들만의 공간에 Cabin, Crew bar, Crew mess 등 승무원을 위한 모든 공간이 있다. 13층씩 되는 크루즈라도 승무원들의 공간은 한 층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사실 굉장히 좁은 공간에서 매일 같은 사람들을 마주친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을 계속 마주치다 보면 많아지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말이다.
가족, 친구들과는 멀리 떨어져 있고, 인터넷은 메시지만 겨우 보낼 수 있을 정도이고, TV에서는 해주고 또 해주는 영화만 반복될 뿐이니 무료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무엇인가? 역시 말이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더라.'
'누구랑 누구랑 만난다더라.'
'누가 누구를 두고 바람을 피웠다더라.'
'누가 누구랑 싸워서 누가 울었다더라.'
이런 일차원적이고 원색적인 루머가 크루즈 선내에 떠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아직 크루즈 선 내에서는 한국이 승무원이 적기 때문에 더 주목을 받는다. (근무하는 동안 최대 4명, 대부분 한국인은 나뿐이었다.) 특히나 아시아권 승무원들이 많은 곳에서는 더더욱. 아시아에 미치는 한류의 힘을 승선하고 나서 확실하게 느꼈다.
한국인들은 피부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그렇게 피부들이 좋은지?
한국 오빠들은 정말 다 잘생기고 스위트한 지?
지금 쓰는 화장품은 뭔지?
한국에 관한 엄청난 관심과 동경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어딜 가든 시선을 피할 길이 없고, 그렇다 보니 언제나 그런 루머의 주인공이 되곤 했다.
외람되지만 나도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데 연예인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
언젠가 한 번은 크루즈 내에 승무원들 사이가 꼭 미국 드라마 속 고등학생들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어쩜 그렇게 다른 사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없는 말이 부풀려져 그게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인지 정말 화가 난적도 있었다. 나와 대화 한번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나의 험담을 하는 것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는 나라님도 욕한다던데 내 앞에서 내게 함부로 하고 나쁜 말을 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등 뒤에서 내게 뭐라고 하던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 뒤론 누가 내 험담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앞에서 할 용기는 없나 보네 하면서 웃어넘길 수 있었고, 이런 일들로 힘들어하는 팀원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도 있었다. 역시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서 내 기분이 이렇게나 달라진다. 하지만 일보다도 이런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사람을 더 괴롭히는 법.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루머에도 흔들리지 않을 무게감을 가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