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생각이 아닌 '나'의 생각을 가져보자
최근 정치적인 문제로 소란한 탓인지, 주변에 정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또한, 2030 여성들이 유독 파란당을 지지하기에 내 주변에도 파란당 지지자들이 대다수이다. 그렇다면 나도 파란당 지지자일까? 아니다. 나는 어떤 당도 지지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보수 쪽에 좀더 가까울 수는 있겠지만, 정치는 항상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각 후보들의 토론과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고 내가 속한 지역과 나라에 필요한 후보에게 투표한다. 정치적 이념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안타깝게도 나의 이런 성향을 어디에서도 이야기할 수 없다. 정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 아니면 도이기 때문이다. 빨간당 지지자라면 무조건 파란당을 욕하거나 파란당 지지자라면 무조건 빨간당을 욕한다. 왜 저렇게 화가 나 있는걸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그냥 동조하며 넘어간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몇 번 지속되다보니 어느 순간 궁금해졌다. 저들은 왜 저렇게 하나의 당을 지지하는 걸까? 그리고 왜 저렇게 화가 나 있는 걸까?
나는 세상에 반드시 옳고 그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보수가 옳고, 진보가 틀린 것은 아니다. 물론, 진보가 옳고 보수가 틀린 것도 아니다. 어떠한 이념에 갇히기 시작하면 그 틀 안에서만 생각하게 된다. 그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 어떤 이념에도 속하지 않고 경계에 선 상태로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길을 걸어 갈 수 있다.
정치는 종교가 될 수 없다. 또한, 정치인은 아이돌도 아니며 신도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계 속에서 어떤 때는 보수 이념에 맞게 행동해야 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진보 이념에 맞게 행동해야 할 때가 있다. 물론, 보수 이념과 진보 이념으로 나누는 것도 좀 웃기다. 어쨌든 '정치'는 추종할 대상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다. 앞서 말했듯이 유동성이 큰 세상 속에서 하나의 이념만을 쫓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와 가치관이 비슷한 정치인을 응원(?)할 수는 있겠지만, 신격화하거나 팬이 된다는 것은 내 입장에선 상당히 불편한 일이다.
한때, 어떤 당을 맹렬히 추종하는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다. 왜 그렇게 그 당을 추종하냐고, 어떤 부분이 너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냐고. 희한하게도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배운 정치의 폐해였다. 주변 사람들도 정치 이야기를 하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근거로 제시한다. 궁금하다. 왜 무작위로 들어오는 정보들을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지. 왜 '나'라는 사람이 타인에 의해 쉴새없이 흔들리도록 내버려두는지 말이다. '남'의 생각에 휘둘리다보니 정작 '나'는 없어지고 분노만 남을 뿐이다. 인터넷의 자극적인 글들은 눈과 귀를 막는다. 그저 만들어진 틀 안에서만 생각하도록 가둔다. 결국 본질은 사라지고 감정만 남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다들 화가 나 있다. 무조건 자신과 의견이 다른 것은 잘못된 거라 비판하며, 무자비하게 상대 편을 깎아 내린다. 그럴 때마다 묻고 싶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가치는 무엇이냐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로서 올곧게 서있지 못하고 잡음에 흔들리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누군가는 '난 잡음을 따르지 않고, 나만의 의견을 내세운 것이다.'라며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또 질문하고 싶다. '그 의견이 정말 당신의 것인가요?', '그게 진짜 당신의 생각인가요?'
나는 사람들이 세상 모든 것에 의문을 품었으면 좋겠다. 질문하고, 의심하기 시작하면 보이는 시야가 달라진다. 나를 가두는 답답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나'로서 올곧게 서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맹렬히 믿고 있는 것이 있다면, 한 번쯤 질문해 보길 바란다. '나는 왜 그것을 믿게 되었는가?', '내가 믿는 것이 진짜인가?'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어라. 그렇다면 오히려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이제는 내가 옳다고 믿었던 새장 속에서 벗어나 날아오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