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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Choi Jun 08. 2020

약간의 거리를 둡니다

코로나 사태가 일어난 지도 벌써 6개월이 되어간다.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죠? 부디 다들 별 일 없으시기를 바란다. 이번 코로나 감염증이 여간 전염성이 높은 게 아니고, 처음 환자가 늘어나는 추이도 예전의 비슷한 바이러스류 질병들에 비해 훨씬 빨라서 나 같은 일반인들은 다들 처음에 좀 당황하고 두려웠던 것 같다.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미지의 위협이란 건 꽤 공포스러운 것이구나 생각했다.

미지의 전염병에 대한 공포감, 자극적인 뉴스, 그리고 자연스럽게 '범인찾기'를 하게 되는 군중 심리 - 한동안 이 모든 게 마치 잘 짜여진 블랙 코미디 시나리오처럼 펼쳐졌다. 처음엔 종교 집단, 그다음엔 성 소수자들, 그다음엔 클럽에 놀러 간 사람들, 그다음엔 택배회사와 방문 판매원... 어디서 이런 영화 본 것 같지 않나요? 영화 주인공은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의 연구원인데, 떼돈을 벌기 위해 치료제 출시를 미루는 회사의 비밀을 폭로하고 치료제를 대량 양산해 인류를 가까스로 구해낸 뒤, 가족들과 포옹하는 순간 감동적인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엔딩 크레딧.... 만일 정말 영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면 이런 장르보다는 로맨스 코미디나 가족 영화가 좋겠다. 물론 반 디젤과 드웨인 존슨이 나오는 영화만 아니라면 뭐라도 상관없긴 하겠지만.


일단 부수고 보는 영화를 굉장히 즐겨보는 편이지만, 그 속으로 정말 들어가고 싶지는 않네요.


내 일상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아무튼 약간 거리를 두면 되는 거겠지 - 하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잘 안 만나고, 헬스장도 당분간 가지 않고, 집에서 콜라와 감자칩을 잔뜩 먹었더니 체중이 늘어난 것 빼고는 다행히 별 일은 없다. 밖에 나갈 땐 마스크를 쓰고, 실내에 들어가면 손부터 씻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가능하면 가지 않으려고 하고... 일단 시키는 대로 하는 건 잘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아무리 잘 지킨다고 해도 갑자기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긴 하다. 어쩌면 벌써 나도 모르게 걸렸다가 나도 모르게 나아서 항체가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조금 다른 면을 보자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거리두기 캠페인 덕분에 좀 편해진 것도 있다. 원래 그렇게 사교적인 성향이 아니면서도 사람 만나는 건 또 좋아해서, 예전에는 약속을 여러 개 잡아놓고 혼자 부담스러워하고 귀찮아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별로 없다. '귀찮다'의 반대말이 '귀하다'라는데, 이제는 만나는 것 자체가 소중하고 특별한 일이 되었으니 귀찮을 틈이 없어졌달까. 그렇다고 혼자 있는 시간에 뭔가 딱히 생산적인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웹툰 보고, 유튜브 보고, 넷플릭스 보고, 밀렸던 책과 영화들을 조금 더 보는 게 다인데, 그런 멍한 시간들이 꽤 필요했던 것 같긴 하다.



노래 제목으로 검색했더니 이런 뮤직 비디오가 나오더군요. 유튜브에서 만난 유희열 옹의 젊은 시절... 위에 사진이랑 놓고 보니까 확실히... (생략)


토이 5집의 <내가 네 남자친구라면>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 모자를 쓰고
아주 좋은 냄새에 빵집에 들러 먹을 걸 사고
비디오 가겔 들어가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를 고민 고민 고르네
어느새 이 어둠은 내 곁에
난 행복해
난 외로워

비디오 가게라니 마치 중세시대 이야기 같기는 한데, 어쨌든 삶의 속도가 두세 템포 느려지고, 생활 반경도 줄어들고, 하루 일상도 조금 더 단조로워진 요즘 내 모습과 비슷한 느낌이다. 모처럼 닥친 사회적인 격변에 들뜬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세상이 세계화 이전 시대로 회귀했다"라는 게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거리두기가 경제 성장에 별 도움은 안 되지만,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삶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럭저럭 견딜 만은 하다. 조금 불편하고, 조금 외롭지만, 조금 더 조용한 하루하루. 충분히 오랜 시간을 혼자 있다 보니 주말에도 늦잠을 자지 않아도 될 만큼 에너지가 생겨서 이렇게 오랜만에 글도 쓸 수 있게 됐고.

어쩌면 이게 원래 적당한 속도와 거리가 아니었을까. 그동안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쏟고 따라다니느라 마음의 에너지를 소모해 왔는데, 이제는 매일 식물에 물을 주는 것처럼 내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에도 조금 더 눈길을 줄 수 있게 됐으니까.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게 불가능해진 건 정말 아쉽긴 하다만... '뭐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나면, 생각보다 마음이 편해지고,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게 된다.

물론 코로나는 빨리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나름 견딜만하다고 써놓긴 했지만, 그래도 심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어쨌든 마음이 영 불편하고 다 같이 처지는 일이니까.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약 발표를 위해 애쓰고 있는 이 영화의 주인공, 화이팅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활동적인 생활이 필요한 여러분들, 약간 거리를 두고 사느라 불편함을 많이 느끼고 계시겠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참아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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