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Choi Aug 08. 2021

필라테스를 합니다

몇 달 전 두통이 심해서 신경외과에 갔더니, 이런저런 약을 처방해주면서 '요가나 필라테스를 한 번 해보라'라고 했다. 일자목도 교정해 주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는 모습이 왠지 잘 상상이 가지는 않았지만, 낮고 친절한 목소리가 왠지 설득력 있었다.


처음에는 요가를 먼저 알아봤는데, 우리 동네 요가 학원들은 여성 전용이어서 대신 필라테스 학원을 찾아갔다. 필라테스 학원도 남자들은 개인 레슨만 등록할 수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개인 레슨이어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자 다음 동작할게요.' 했을 때 '끄어어' 하며 바들바들 떠는 모습은 웬만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죠.



처음 한 달 동안의 수업은 대충 이런 과정으로 진행됐다. 일단 목 스트레칭으로 시작한다. 목을 오른쪽 왼쪽 앞 뒤로 쭉쭉 뻗고 돌려준다. 그리고 이어서 옆구리를 쭉쭉 찢는다. 그리고 다리를 또 쭉쭉 찢는다. 이렇게만 적으니까 굉장히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 실제로 별 거 아닐 수도 있지만 - 옆구리 찢는 동작이 두세 개, 다리 찢는 동작이 서너 개쯤 되니까 어떤 날은 찢기만 하다가 끝나는 날도 있었다.


하루는 선생님께 "선생님, 오늘은 어디부터 찢나요?" 하고 (최대한 공손하게) 여쭤봤는데, "아니요 오늘은 접을 거예요"라고 하셔서 절망했던 날도 있다. 그날은 온몸이 부위별로 차곡차곡 접히는 새롭고 즐거운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 흉곽을 완전히 조이는 필라테스 호흡법을 곁들인...


본래 '필라테스'라는 단어는 필라와 테스의 합성어로 '찢고 접는다'라는 독일어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사실 사람 이름이다. 독일의 요제프 필라테스라는 사람이 20세기 초중반에 전쟁으로 인한 부상자들의 재활 치료를 주된 목적으로 이 운동법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학원 입구에 이 할아버지가 매섭게 운동을 지도하는 커다란 사진이 걸려있는데, 노령에도 온몸의 근육이 날이 선 굉장히 건강한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다.



운동을 하고 한두 달 시간이 지나자, 등이 결린다든가 머리가 아프다든가 하는 증상이 많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딴딴하게 뭉쳐있던 뒷목도 이제는 말랑말랑 많이 부드러워졌다.  물론 며칠 운동을 안 하면 또 몸이 굳는 기분이 드는데, 이렇게 '몸이 굳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 반대로 그런 변화를 느낄 만큼 부드러워졌다는 뜻일 수도 있다. 매번 운동 갈 때마다 바들거리고 있을 뿐인데 그래도 그게 효과가 있었나 보다.


요즘 별다른 스트레스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근심 걱정 없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많이 펴지면서 그동안 내가 참 오랫동안 마음을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살아왔구나 싶다. 자세가 잘못되면 몸이 굳는 것처럼, 마음 자세가 잘못되면 마음도 응어리져서 굳는 거겠죠.


그럴 땐 마음도 쭉쭉 펴주면 된다. 자꾸 부정적인 생각을 강요하는 환경은 가능하면 빨리 떠나는 게 좋을 것 같고. 물론 말처럼 다 쉽지는 않겠지만, 매번 수업 때마다 자주 듣는 말처럼 - "괜찮아요.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 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도로 위의 모차르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