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성 우유로 만든 비건 라떼 주세요"라고 당당히 이야기할 것.
비건을 지향하면서 우유와 유제품을 끊은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우유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의 일상으로 오게 되는지 알게 된 이후부터 우유를 먹지 않기로 했다. 태어난 지 얼마 안돼서 사람에 의해 강제로 임신을 당하고, 젖소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매일 같이 우유를 짜내는 기계처럼 학대당하는 소가 생산해내는 우유가 과연 사람의 몸에 이롭다고 할 수 있을까? 학대받는 소의 고통과 슬픔이 그대로 응축된 고름과도 같아서 우유를 먹을 수가 없었다.
식물성 우유라고 하면 예전에는 두유 정도를 떠올렸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 종류가 훨씬 다양해지고 대중화되었다. 귀리나, 아몬드, 퀴노아와 같은 슈퍼푸드로 각광받는 재료들 뿐만 아니라, 코코넛, 쌀을 재료로 해서 만든 식물성 음료들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지방과 탄수화물이 함량이 적고 칼로리도 낮으며 소화도 잘되고 영양소도 풍부하기 때문에 그냥 우유보다 가격은 조금 비싸더라도 식물성 우유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편의점이나 마트의 유제품의 진열대를 보면 예전보다 훨씬 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스타벅스와 몇몇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비건을 위한 옵션이 있어서 라떼를 주문할 때 우유 대신 두유로 변경이 가능하지만 (일반 우유보다 가격은 더 비싸다.) 대부분 이런 선택권이 없는 카페가 많아서 라떼를 마시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중 평소 좋아하는 카페에서 비건을 위한 옵션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500원을 더 추가하면 우유 대신 오틀리라는 식물성 귀리 음료로 만든 라떼를 마실수 있게 된 것이다.
인쇄소와 오래된 건물들이 밀집된 골목 한편에 자리 잡은 카페. 5평 남짓의 이 작은 공간은 맛있는 커피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특히 라떼가 진하고 정말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라떼를 마시고 싶은 유혹을 뿌리친 채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라떼는 사이즈에 따라서 5온즈와 7온즈 두 종류가 있는데, 5온즈는 우유가 더 적게 들어가서 더욱 진한 커피 맛을 느낄 수 있다.
오랜만에 이 곳에서 라떼를 마셨다. 나의 텀블러 사이즈에 딱 맞는 5온즈 라떼.귀리음료로 변경하였음에도 에스프레소의 진하고 고소한 맛이 살아 있어서 정말 만족스러웠다. 주문할 때 텀블러에 담아달라고 하면서 텀블러를 카운터에 올려놓으니 바리스타 분께서 텀블러 사이즈랑 디자인이 너무 귀엽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런 친절한 말과 웃음이 결코 형식적이지 않고 진심으로 느껴진다.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 언니에게서도 일에 대한 열정과 애정, 자부심이 느껴진다. 이로써 이 카페에 대한 나의 호감도는 훨씬 높아졌고 앞으로 더 자주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사장님께 따로 여쭈어 보지는 않았지만 짐작컨대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는 카페이니만큼 비건이나 우유를 먹지 못하는 단골손님들로부터 식물성 우유로 만든 라떼 메뉴를 추가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을 것이리라.
비건이 아니더라도 우유를 먹지 않거나 못 먹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우유에 함유된 젖당을 분해하는 효소인 락타아제가 부족해 설사 같은 증상을 보이는 유당불내증은 한국인 4명 중에 3명은 이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서 유당불내증 보다 동물 보호와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의식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돈을 조금 더 지불하고 서라도 식물성 우유를 택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최근에는 미국 스타벅스에서도 귀리 음료인 오틀리로 만든 "오틀리 라떼"를 메뉴에 추가했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채식주의, 비건이 트렌드가 되면서 관련 상품들의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건강한 먹거리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긴 현상인 것이다.
예전에는 이렇게 우유를 식물성 우유로 대체해 주는 것이 소수자들을 위한 특별한 배려라고 여겼다.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배려가 아니라 비건이나 우유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누려야 하는 권리와 선택권의 문제이다. 우유 대신 식물성 우유를 찾는 것이 별나거나 까탈스러움이 아닌 그저 개인의 취향과 기호의 문제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서 카페나 식당에 가서 당당하게 우유 대신 식물성 음료로 대체해 달라고 주문할 수 있는 카페가 점점 많아 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비건에 대한 관심도 일시적인 트렌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래동안 이어지면서 하나의 문화로 단단하게 자리잡았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르들의 가치를 위한 소비가 필요하다. 동물보호와 지속가능한 환경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작지만 가치 있는 우리의 소비가 기업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아니 이미 바꾸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