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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bbers Nov 19. 2021

성장은 지겹다

-핫초코의 계절들 (1)-

내가 어렸을 때의 미국은 조금 더 전통적이었던 것 같다. 무엇이든지 갖고 싶을 때나 사고 싶을 때 살 수 있는 지금과는 다르게, 내가 살았던 옛날의 미국은 어느 계절이나 어느 상황에만 특별하게 나오는 '무엇'이 더 철저하게 정해져 있었다. 그 '무엇'들 중에서는, 가을과 겨울이 왔다는 걸 알 수 있던 '핫초코'가 있었다. 밖의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서 어느새 거리나 건물 안에 사람들의 외투가 두꺼워지는 걸 목격한다면, 미국은 핫초코의 계절이 온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미국은 10월 말에 있는 핼러윈의 몇 주 전부터, 핫초코의 향기가 곳곳에 나기 시작한다. 놀이공원에서건, 교회나 학교에서건, 그리고 스타벅스에서건, 핫초코의 단향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핼러윈도 지나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때의 핫초코의 계절을 마주한 미국은, 집안과 밖을 장식하고, 때에 맞는 음식을 위해 장을 보기 시작하며, 또 선물들을 사는, 아주 분주한 나날들을 살아간다. 핼러윈 때에는 공짜로 사탕과 초콜릿을 나눠주고, 추수감사절에는 맛있는 음식과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고, 그 무엇보다 크리스마스에는 산타를 아이들에게 소개하며, 또 선물까지 준다. 그러나 한국인이었던 우리에겐, 그날들은 조금 특이했다. 




핼러윈


대체적으로 미국의 핼러윈은 10월의 마지막 날이 아닌, 10월의 첫날부터 시작이 된다. 집집마다 일주일을 거쳐 점점 핼러윈 장식들을 내놓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앞에 얼굴이 생긴 호박을 내놓았다가, 이틀 후엔 그 호박이 세 개로 부풀러 져 있고, 또 일주일이 지나면, 어느새 집 곳곳에 호박과 조명, 그리고 솜으로 된 거미줄들이 쳐져있다. 어쩔 땐, 그런 집들을 지나가 보면, 정말 핼러윈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집을 볼 수 있다. 그런 집들은 퀄리티가 다르다. 거미줄과 호박, 조명은 기본이고, 어쩔 땐 좀비 마네킹이나, 플라스틱으로 된 무덤들을 정원에 꽂아놓는다. 또, 어쩔 땐 조명하나 가 낮에 봤을 때 평범했던 집을, 홀로그램처럼 마녀의 집이나 영화에서 보았던 장소로 바꿔놓기도 한다. 그런 집들은 핼러윈 당일에 가장 사람들이 많이 왔다가는 집들이다. 


미국에 온 한국인 가족인 우리는, 핼러윈의 개념을 단번에 잘 알아채지 못했다. 우리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핼러윈은 기독교인으로서 축하하고 참여하는 날이 아니라고 해, 우리 가족은 처음에 굉장히 단출하게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에 우리 가족은 마치 10월에 특별한 날이 없는 것처럼 굴다가, 아파트인데도 불구하고 점점 우리 동네 집들이 집집마다 장식을 하자, 우리 엄마는 의식하기 시작하셨던 것 같다. 내가 학교에 다녀왔더니, 우리 집 앞에는 펌킨이 놓아져 있었고, 문고리에는 추수감사절 장식품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핼러윈 준비가 처음이었던 엄마에게는, 미숙함이 있었다. 그리고 핼러윈 당일이 다가오자, 사탕과 초콜릿을 그동안 사지 않았던 우리에겐 비상이었다. 당장 슈퍼에 가도 다 팔렸거나, 값이 비쌌다. 몇 없는, 전시된 사탕들을 바라본 엄마는, 핼러윈 당일 아침에 쿠키를 구우셨다. 엄마는 제빵기술을 배우신 적이 있으셨다. 그 기술을 처음으로 내 앞에서 선보이셨다. 바로 핼러윈 날에. 


엄마는 땅콩쿠키를 구우셨다. 말 그대로, 피넛버터를 쿠키 반죽에 넣어, 더 고소한 버터쿠키를 만드셨다. 엄마는 구운 쿠키들을 낱개로 잘 포장해서, 우리 집 문 앞에 놓았다. 그리고 애들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려 'Trick or Treat'을 외칠 때, 엄마는 애들이 기대했던 캔디들 대신에 각각의 애들의 손에 포장된 쿠키를 올려주셨다. 당황한 표정의 애들과 그 애들의 부모님은, 멋쩍은 듯한 표정으로 떠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애들이 한두 명 오다가, 더 이상 우리 집으로 오지 않았다. 


엄마는 쿠키를 주었던 것에 만족스러우신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는 알지 못하셨다. 핼러윈에는 사람들이 직접 만든 음식은 애들이 버려야만 한다는 걸. 미국은 어린이들이 핼러윈의 사탕들을 다 받으면, 그 가득 찬 바구니를 들고, 근처 소방서로 간다. 그 소방서에서는, 직접 만든 캔디나 음식들은 가차 없이 버린다. 심지어 일반 포장된 캔디들 조차도 금속탐지기를 거쳐야 안전하게 가져갈 수 있게 한다. 이것은 혹시라도 캔디에 약품이나 면도칼 같은 물건들을 어린이들이 먹지 않게 방지하는 것이다. 즉, 우리 엄마의 쿠키는 아마 한 번도, 어떠한 어린이의 입속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을 모르셨던 우리 엄마는,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시며, 우리 가족은 핼러윈 장식과 사탕들을 더 이상 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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