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아바타
이렇게 아무런 계획 없이 간 여행은 처음이었다. 뉴욕 여행 직후에 대망의 9박 10일간의 올랜도 여행이 계획되어 있어서 뉴욕은 상대적으로 기대치도 낮아지기도 했고, 과제 시즌의 끝자락에 걸려있는 여행이어서 계획할 시간도 사실 별로 없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떠난 뉴욕 여행이 그렇게 감동적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처음에 뉴욕 여행을 계획했던 때에는 재정에 여유가 있어서 쇼핑을 할 거라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지만 올랜도 여행을 계획하며... 허허 디즈니 월드는 유원지라 모든 게 다 비싸.... 허허 그 계획을 살포시 접었다. 접었는데!! 사랑하는 엄마님이!! 엄마 아빠 선물을 사 오라며 긴급 수혈을 해주셔서!! 77ㅑ아!! 첫날은 쇼핑을 하기로!!
그렇게 원대한 포부를 안고 우드버리에 도착했는데, 음.... 왜 때문에 살 게 없죠... 왜 때문에 마음에 드는 게 없죠.... 아빠 선물은 거침없이 골랐는데 엄마 선물부터 난관이었다. 엄마랑 나는 키도, 몸무게도 비슷해서 옷장을 거의 공유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도 엄마가 너무 애 같은 디자인은 못 입기 때문에 거의 내가 엄마 옷 뺏어 입는다.) 나는 엄마의 아바타가 되었다.
엄마가 좋아할 만한 디자인의 옷을 찾아서 입어보고 사진 찍고 와이파이 잡히는 데를 찾아가서 사진을 보내고 물어보고 지도를 보고 또 엄마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찾아서 엄마가 좋아할 만한 옷을 입고 사진을 찍고 와이파이를 찾고..... 내 마음에 딱히 드는 것도 없는데 엄마 맘에 드는 게 있을 리가 없었고 막판에는 엄마 옷을 입어본다며 피팅룸에 들어가서는 옷은 내버려두고 혼자 셀카 찍고 노는 경지에 이르렀다. 살면서 쇼핑이 그렇게 지겨운 건 처음이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그대로 침대에 철퍼덕 엎어졌다. 밥... 밥을 먹어야 해... 하며 흡사 좀비 같은 모양새로 일어나서 밖을 나갔는데, 타임스퀘어를 보자마자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뉴욕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타임스퀘어라서 근처에 숙소를 잡았는데 그러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 치이는 거 딱 질색인데 밤에 타임스퀘어에서 할랄 푸드 먹으면서 사람 구경하는 건 참 즐거웠다. 뮤지컬 알라딘, 라이온 킹, 영화 정글 북을 번갈아가며 광고하는, 디즈니가 전세 낸 듯한 광고판을 바라보는 것도, 지나가는 2층 버스 관광객들과 서로 손을 마주 흔드는 것도, 모두 마냥 즐거웠다. 대도시의 극치인 마천루와 전광판이 둥지를 만들 듯 둘러싼 곳에 앉아 바삐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만히 이 모든 걸 들여다보는 건 왠지 모르게 조금, 짜릿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