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ㄱㅈㅊ Oct 01. 2020

안은영이 이상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유

<보건교사 안은영> 드라마 평문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드라마 곳곳에서 나타난 '웃음'

웃음의 이면 살펴 허상 가려내

이유 있고 이해되는 은영의 웃음

맹목적인 욕망의 웃음과 대비시켜

폭력적 웃음에는 웃지 않으며 맞서기도

그로테스크 헤집고 웃음 가치 구별해


드라마 홍보 문구가 말해주듯,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가 열렸다. 매화 보면 볼수록 분명 이상하면서도 왠지 아름답고 언뜻 기괴하면서도 무언가 정미하다. 이런 독특함은 ‘영적인 무엇인가’를 본다는 캐릭터 설정이나 신흥 종교가 학교를 점령한다는 기이한 서사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이경미 월드’란 장르를 구축한 감독의 독특한 연출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주된 이유는 드라마 장면 곳곳에서 등장하는 ‘웃음’에 있다.


웃음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웃음과 관련한 장면은 꾸준히, 자주 나온다. 시작 10분도 채 되기 전에 웃음과 관련한 첫 장면이 나온다. 은영의 엄마가 은영을 새엄마에게 데려다주는 장면이다. “울면 안돼. 웃어. 그래야 행복해져, 응?” 은영이 울자 엄마가 말한다. 애써 위로하는 말을 건네고 그는 액체로 변해 땅에 스며들어 사라진다. 웃으라 말하는 장면은 영화 <조커>와 닮았다. 두 영화 모두 엄마가 자식에게 웃으라 말한다. 영화 <조커>에서도 엄마 페니 플랙이 “너는 항상 웃는 아이야. 웃는(행복한) 표정을 지으렴”이라고 아들 아서 플랙에게 말한다. 부모는 ‘웃어야 행복하다’ 혹은 ‘웃음은 좋다’는 명제를 자식에게 건넸다. 아이는 그렇게 부모에게 ‘웃음은 좋다’는 판단을 상식이라 배운다.


사실 우리도 비슷하게 배우고 있다. 극 중 학교가 그렇듯 실제 학교와 몇몇 군부대는 웃음 체조를 일과 중 하나로 정해놓고 아침마다 실시하고 있다. 웃음 체조란 말 그대로 몇 초간 깔깔 소리 내어 웃는 운동이다. 체조 장면에서 은영은 “언뜻 보면 다들 행복해 보인다”고 독백한다. 통념과 달리 은영은 웃음의 이면을 꼬집는다. 평범한 이들과 다르게 그는 ‘젤리’를 봐왔기 때문이다. 설정에 따르면, 젤리는 욕망의 흔적이다. 살아있는 모든 건 젤리를 만든다. 그는 너저분한 젤리를 보고, 누군가가 웃는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기뻐지지 않을뿐더러 웃는 표정과 다르게 내적으로는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았다. 은영이 보건교사임에도 '내 몸이 좋아진다'는 웃음체조를 마냥 반기지 않았던 이유다.

    

이 지점에서 우린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은영처럼 우리도 욕망의 흔적인 젤리를 화면 너머로 본 이후로 말이다. 웃음은 좋은 건데 싶다가도, 정말 좋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젤리로 인해 우리는 웃음을 전과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웃음은 다양한 모양새로 나타난다. 껄껄대고 큰 소리로 웃는 웃음과 조용한 미소, 허탈한 웃음과 씁쓸한 웃음, 비난하거나 폄하하는 비웃음 등이 있다.

  

한문교사 홍인표를 처음 만난 보건교사 은영은 인표의 영험한 보호막을 보고 싱긋 웃는다. 지하실로 들어가서 은영은 인표에게 “기운이 좀 특별하세요.”, “혹시 도를 아세요?”라는 장난을 치곤 몸이 떨릴 정도로 크게 웃는다. 일련의 장면을 통해 우린 은영의 웃음을 이유 있고 이해할 만한 웃음이라 받아들인다. 그의 웃음에 따른 산뜻함은 이후 이어지는 다른 웃음으로 인해 스산함으로 바뀐다. 두 교사가 지하실에서 무언가를 건드리자, 학교 아이들은 쉼 없이 웃기 시작하며 옥상으로 내달린다. 이상한 웃음은 아픔 같은 다른 감정까지 덮는다. 학생 승권은 날카로운 쇠철심을 맨손으로 움켜쥐었는데도 계속 웃는다. 맥락에 맞지 않고 이유도 없는 맹목적인 웃음이다. 이해할 수 없는 웃음에 관객은 기괴함과 공포를 느낀다.


공포 섞인 웃음이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준다. 병리적 웃음을 담았던 영화 <조커>에 관한 한 분석에 따르면, 이런 웃음은 ‘검은 웃음’이다. 공포와 웃음이 이율배반적이지 않고  한데 모여있다. 영화 <조커>의 감독인 토드 필립스는 희극과 비극의 경계가 의외로 모호할 뿐만 아니라 둘의 관계가 기묘하지만 긴밀하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조커>처럼, 옥상으로 내모는 웃음도 그로테스크 미학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런 웃음은 관객에게 불편한 느낌을 준다.


아이들의 웃음에는 '악운'이란 맥락이 더해진다. 인표의 말에 따르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과거 ‘자살을 위장한 타살 시신이 버려지는 등 폐단이 있던 곳’이다. 애석한 죽음은 지하실의 나쁜 기운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를 막아주던 장치를 두 교사가 잘못 건드리자 악운은 다시 세상에 기세를 떨친다. 학교에 있던 아이들은 덩어리진 욕망에 휩싸여 자의를 위장한 타의로 웃기 시작한다. 웃음은 입에서 시작해서, 얼굴로 퍼지고, 결국 온몸으로 퍼진다. 그리곤 옥상으로 내달려 자살로 위장한 타살로 향한다.


은영의 웃음이 이에 맞선다. 두 교사는 이상한 낌새를 느끼곤 옥상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둘은 욕망 덩어리인 두꺼비와 다투고, 우연히 은영은 인표와 손을 잡는다. 그러자 인표의 기운이 은영에게 전해진다. 이때 은영은 크고 확실하게 웃는다. 발그레한 볼에 동그랗게 커진 눈이 돋보이는 웃음이다. 감독은 볼의 색깔과 눈의 크기로 웃음에 각기 다른 의미와 결이 있다는 걸 드러낸다. 맹목적인 웃음과 은영의 웃음이 대비를 이룬다.


우리는 언뜻 과장됐다고도 볼 수 있는 은영의 웃음에 진심을 느낀다. 그건 우리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은영의 삶을 줄곧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그는 (1)살아있는 모든 건 욕망을 지녔고 (2)욕망이 부적절하게 사라지거나 쌓이면 문제가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아는 데서 멈추지 않고 세상과 욕망이 적절히 조화되도록 돕는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남을 돕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X발.”, “학교 그만두고 싶어.” 욕하고 투덜대도 은영은 스스로 하던 일을 멈추지 않고 학교를 포기하지 않는다. 갑작스레 젤리가 보이지 않아 남을 돕는 일을 잠시 멈추긴 했어도 자발적으로 그만두진 않는다.


그의 이유 있는 웃음에 우리는 설득된다. 웃음에서 따스함을 느끼고 그와 함께 미소를 짓게 된다. 은영의 웃음에는 항상 진심이 듬뿍이다. 며칠 만에 만난 은영이 인표와 만나 부산을 향할 때, 핸들을 잡고 운전하던 인표의 손에 은영이 손을 포개며 웃는 걸 보고 우리도 함께 “좋아 죽는다.” 이때도 볼은 빨갛고 눈은 땡그랗다.


인표는 웃지 않는 걸로 또다른 웃음과 맞선다. 누군가를 얕보는 비웃음에 대해서다. 인표와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은 교무실에 모여 동성애와 장애를 조롱하고 비웃는다. 이 웃음은 형식적으로 이유가 있어보이지만, 실상은 거짓되고 헛된 이유에 기반한 조소다. 조롱 섞인 웃음은 주위로 확산하며 다수의 웃음이 된다. 비웃음의 울림은 인표에서 멈춘다. "왜 웃죠?" 그는 이유가 없는 이 웃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해하지 않고 관련 장면 내내 웃지 않는다. “혼자가 된 기분이에요.”라고 독백했듯 다수에 맞서는 상황임에도 그는 굴하지 않는다.


드라마는 은영이 싱긋 웃는 장면으로 끝난다. 학생 래디는 엄마가 귀신을 보니 자기 집에 와달라고 은영에게 말한다. 은영은 몇 초간 가만히 있다가 곧 눈을 크게 뜨고 씩 웃는다. 그렇게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웃음으로 끝이 난다. 드라마는 웃음으로 시작해 웃음을 파헤치고 웃음으로 끝을 맺는다.


은영과 인표는 매화 가지각색의 헛된 웃음과 부딪쳤다. 능동적으로 상식을 살피고 이에 맞서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해내는 은영을 보고 우린 통찰을 얻는다. 잘못된 상식에 쉽사리 동조하지 않는 인표를 보고 우리는 따스함을 느낀다. 이들은 웃음의 차이를 구별해내며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간다. <보건교사 안은영> 드라마가 이상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유는 혼잡한 웃음을 세세히 구별하고 가치 있는 웃음을 전면에 드러내는 데 있다.


무척 시끄럽고 불편한 삶일 것이다. 최종화에서 은영은 잠깐 젤리가 보이지 않는 삶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젤리가 안 보이는 세상은 정말 특별했다. 고요하고 참 편안했다. 모든 색깔이 조화롭고 모든 모양은 완벽했다.” 젤리를 보는 그의 삶은 앞으로도 굴곡지고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상한 젤리를 보는 한, 그의 곡진한 시선이 세상을 향하는 한, 세계는 분명 계속해서 아름다울 것이다.


https://brunch.co.kr/@steelw2fo/23

작가의 이전글 엉뚱한 도망에도 존중이 있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