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했던 그 집
6월 8일.
트럭 기사님이 오기로 한 시간은 오후 2시. 엄마와 나는 막바지 짐 싸기에 돌입했다. 아침 일찍 다이소에 들러 대형 이사 박스를 구매 후 차곡차곡 짐을 넣었다.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마음이 안 좋아질까봐 쉬지 않고 일했다. 그러다 옷장 안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대근이의 수염 한 가닥을 발견했다. 답답해졌다. 이번엔 수염을 태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 한 가닥을 대근이의 유골함 뚜껑에 붙였다. 아이를 보내줄 때 같이 날려 보낼 심산이었다.
짐을 1층에 내리기 전 집 구석구석을 돌았다. 유골함을 고이 안고, 대근이가 좋아하던 곳에 한 번씩 함을 내려 두었다. 좋아하던 창틀, 옷장 안, 책상 위, 내가 들어가지 말라고 했던 모든 곳에 유골함을 두었다.
일초, 이초, 삼초, 충분히 공간을 즐길 수 있게 시간을 두고 전체를 돌았다.
나름의 의식과 같은 집 산책을 끝낸 뒤, 잠시 유골함을 올려두고 쌓여있는 모든 짐을 1층에 내렸다. 짐이 빠지자 방에서 소리가 울렸다. 엄마가 마지막 짐을 들고 내려갔고 나는 조금 더 집에 머물렀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고가 난 당시엔 일분 일초도 이 집에 있기가 싫었는데, 막상 모든 게 결정되고 나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사무치게 현실로 다가와서일까. 한참을 망설이다, 다시 한번 유골함을 들고 방을 돌았다. 함께했던 우리의 추억을 기리기 위해서.
마지막이 어떠했든
이곳에서 너와 나는 참으로 행복했으니
우리 모든 걸 여기에 내려놓고 부산으로 떠나자.
이곳저곳을 돌다가 옷장을 열고 유골함을 넣으려는데, 뚜껑 위에 있던 대근이의 수염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수염 한 가닥일 뿐인데도 나는 그 수염에 대근이를 투영하고 있었다. 찾아야 했다. 나 없는 이 집에 내 새끼를 남겨둘 수 없었다. 초조한 마음을 숨기며 수염을 찾아 헤맸다. 다행히 수염 한 가닥은 창틀에 떨어져 있었다. 창틀. 창틀이었다. 사고가 났던 바로 그 창.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하기에, 나는 대근이가 바라봤을 풍경을 한동안 바라봤다. 그리고 테이프 두 줄로 수염을 단단히 고정했다. 집을 나서기 전, 다음 세입자가 행복하길 바라면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5년 동안 잘 지내다 갑니다.
둘이 들어왔가지만 혼자 나가게 됐습니다.
그래도 우린 행복했습니다.
트럭에 짐을 실었다.
유골함을 꼭 끌어안고 서울을 떠나는 길, 복잡한 마음을 숨기느라 애를 먹었다. 몇 시간 뒤 부산에 도착하니 본가 고양이 칠석이가 나를 반겼다. 기분이 이상했다. 석이는 대근이를 좋아했다. 시종일관 장난을 걸다가도 알로 그루밍을 하기 일쑤였다. 대근이는 누가 봐도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는데, 결국엔 석이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그만큼 우리 아이는 착하고 순했다. 석이를 보니 한 세트처럼 대근이가 떠올랐다.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아, 이래서 반려동물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곧바로 입양하지 말라는 거구나.
무거운 마음을 숨기기 위해 또다시 일했다. 가져온 짐을 새벽까지 정리했다. 그 와중에 석이는 계속해서 내 옆에 있었다. 내 물건에 자신의 냄새를 묻히고 다니는 석이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석이는 사랑스러웠지만 대근이가 더 예쁘고 소중했다. 나는 석이가 귀여워서 웃다가도 대근이가 여기에 없다는 사실이 실감 나, 몇 번이나 답답함을 숨겼다. 뭐, 그래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온가족이 같이 있는 게 나에겐 나은 일이었다.
다만 엄마도 나도 자꾸만 석이를 대근이라 불렀다. 실수로 대근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올 때마다 엄마는 나를 살폈고, 나는 울컥했다. 그때마다 심장이 요동치는데 그 심장이 땅속에 묻혀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그날 밤, 엄마는 내 옆에서 잤고 나는 엄마가 자는 걸 확인한 후 조금 울었다. 유골함에서 대근이의 뼛가루가 든 봉투만 꺼내 가슴에 얹고 숨죽여 울었다. 다음 날 엄마와 뒷산에 올라 아이를 뿌려줄 예정이었기에 나는 온 힘을 다해 대근이를 가슴에 품었다.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신을 원망하진 않았다. 그냥 이 모든 게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이려 애를 쓸 뿐.
감정이 차분해질 때 쯤 탁탁탁하는 발소리와 함께 석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석이는 내 다리 사이에 둥글게 몸을 말고 누워 기댔다. 묵직했다. 내 가슴 위의 봉투는 너무나도 가벼운데, 석이의 존재감은 묵직했다. 몸을 일으켜 봉투를 석이의 코에 가져다 댔다. 석이는 한참 동안 냄새를 맡다가 살짝 깨물기도 하고, 이마로 봉투를 툭툭 치기도 했다. 석이는 지금 대근이와 인사를 하고 있을까. 우리 대근이가 모든 가족과 인사를 하고 떠난다 생각하니 기분이 나아졌다.
어쩌면 정말 마지막이 될, 그날 밤. 나는 한참이나 잠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