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너 없는 서울이 싫어서

나는 서울을 떠나기로 했다

by 흐를일별진



택시를 타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1층 주차장을 지나며 엄마에게 며칠 전 상황을 설명했다. 최대한 덤덤하게 ‘그냥, 그런 일이 있었어’ 정도로. 속은 썩어가는 듯했지만 티내지 않았다. 작은 유골함을 들고 7층, 우리가 함께 지냈던 방에 들어섰다. 무서울 만큼 조용했다. 울컥했지만 다시 울음을 삼켰다.

대근이가 좋아하던 책상 선반 위에 유골함을 올려두고 잠시 침대에 앉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엄마가 내게 물을 권했으나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다. 집안 곳곳에 대근이의 물품이 가득했다. 주인을 잃은 물건들. 나는 어쩌질 못해 멍하니 있다가 툭하고 말을 내뱉었다.


“엄마, 나 이사 갈래”

대근이가 없는 이 집에서 살 자신이 없었다. 모든 일이 일어난 곳인데 어떻게 내가 저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할 수 있겠으며, 매일 주차장을 지나 출근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없었다. 이 집에서 나는 죄인이었고 사랑하는 고양이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모든 건 내 의지를 벗어난 사고다. 몇 번을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아도 어쩔 수 없었다.

이 집도 이 동네도 싫었다. 나는 외출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한 번씩 개인적인 일로 나가면 대근이가 신경 쓰여 늘 일찍 돌아왔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대근이를 생각하며 달려오던 동네였다. 이 동네의 모든 추억에는 대근이가 있었다. 그러니 더는 이곳엔 대근이가 없다고 말하는 이 집이 죽도록 싫고 끔찍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엄마는 단번에 그러자고 했다. 이 집에서 지낼 수 없는 건 확실하니 주저 없이 집 정리를 시작했다. 우선 집을 가득 채운 대근이 물품부터 정리했다. 대근이가 앉아있던 캣타워, 창틀에 걸쳐 두었던 선반형 캣타워, 장난감, 다양한 모양의 스크래쳐, 살이 빠지는 대근이가 걱정돼 구매한 반려동물용 체중계, 퇴원하면 먹이려고 준비했던 영양제들, 사고가 나기 며칠 전 샀던 간식들, 대근이의 스카프, 자주 올라가 있던 방석, 화장실. 아이의 흔적이 남아있는 모든 걸 밖에 내놨다. 대근이를 위해 사 모은 데는 몇 년이 걸렸는데 버리는 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아이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버려지니 집이 텅 비었다.

엄마는 새삼 놀라운 듯했다.

“우리 진이, 대근이 위해서 많이도 사놨었네, 전부 대근이 거밖에 없노”

그랬다. 좁은 원룸 안에서 대근이가 답답할까 봐 온갖 수직 공간은 다 만들어두었다. 입이 짧고 장난감에 쉽게 질리는 대근이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온갖 종류의 간식과 장난감을 테스트해야 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쌓여가는 건 엄청났다. 그래도 잘 모아두면 언젠가는 써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쓸모가 없어졌다.


오 년 전, 이 집에 들어올 땐 좋았다. 보증금 이천에 월세 이십오만 원. 관리비를 합해도 매달 삼십삼만 원 정도가 나갔다. 관리비에 포함 안 된 전기를 펑펑 써도 삼십오만 원을 넘은 적은 없었다. 채광이 좋았고 방도 9평 정도라서 나쁘지 않았다. 대근이도 금방 적응했기에 이 집에서 좋은 기운만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진짜 행복했었다. 물론 프리랜서 작가인 내 직업 특성상 슬럼프가 오기도 하고 힘든 일이 있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대근이는 내 곁을 지켰다. 하물며 우리 집안에 큰 사건이 여러 개 터졌을 때도 대근이는 가족의 곁에 있어 주었다. 늘 나와 함께였다. 엄마에게는 딸의 타지 생활을 지켜준 소중한 존재가 대근이었고 나에게는 내 중심과도 같은 든든한 존재였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우리가 함께한 그 집이 그렇게 끔찍해질 줄은 몰랐다. 너무나도 소중했던 기억이라 미치도록 끔찍해졌다.


생각이 많아지자 답답해졌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으나 엄마가 걱정됐다. 엄마가 나 때문에 식사를 걸러선 안 됐다. 죽을 먹기 위해 역 근처로 이동했다. 식당에 앉았으나 반도 먹지 못했다. 억지로 먹으려 해봤지만 넘어가질 않았다. 덩달아 엄마도 많이 먹지 못했다. 남은 죽을 그대로 챙기고, 나온 김에 집을 알아보러 옆 동네를 돌아다녔다. 까치산, 우장산, 신정 네거리 등 후보지는 많았지만 내가 지낼 수 있는 집은 없었다. 기존의 원룸이 워낙 좋은 조건이었기에 내가 가진 것으로는 현 시세를 따라갈 수 없었다. 엄마도 나도 고민에 빠졌다. 그 집에서 계속 살자니 미칠 것 같고, 일이 있는 엄마가 계속해서 서울에 있을 수도 없었다.

거리를 걸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대근이 없는 서울은 나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대근이가 나의 집이었다. 언제든지 돌아갈 곳. 돌아가면 늘 기다리고 있는 존재. 존재 자체가 내 행복이었던 우리 대근이. 그런 대근이가 없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문득 몇 년 전부터 해오던 생각이 구체화 되기 시작했다. 나는 서울이 싫었다. 내가 서울에 있어야만 했던 이유는 방송작가라는 직업 때문이었다. 서울이 아니면 안 되는 직업이라 올라왔던 건데, 작가로서 11년을 보내는 동안 이 업계에 학을 뗐다. 존경할 만한 선배는 아무도 없었고 이 업계의 모든 사람은 10년이 지날 동안 변하지 않았다. TV 작가 일에 회의감이 들 무렵 좋은 기회로 엔터테인먼트 영상팀 작가로 일하게 됐다. 연이 닿아 두 개의 엔터 일을 병행했는데 하나는 프리랜서 계약직으로 상근해야 했고 하나는 자유롭게 건 바이 건으로 일하는 방식이었다.

그 와중에 엄마는 몇 번이나 이사를 권했다. 일이 안정적이니 더 큰 집에서 대근이랑 편하게 지내라는 거였다. 그때마다 나는 대근이와 이사 가기 힘들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변화를 미뤘다. 속으로는 온갖 변화를 기대했으나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대근이에게 사고가 난 시점은 상근하던 엔터와의 계약이 끝날 무렵이었다. 말인즉슨 내가 더 이상 서울에 묶여 있을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했다. 모든 상황이 내 등을 떠미는 듯했다. 변화를 받아들이라고, 이제 움직이라고.


그때 엄마가 말했다. “진아, 부산 내려갈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어. 내려갈래”


어차피 서울엔 방이 없고 어떻게 방을 구한다 해도 혼자 지낼 수 있을리 만무했다. 선택지는 하나였다. 부산에 내려가는 것. 마음을 먹자마자 관리 사무소에 연락해 집을 빼겠다고 했다. 다만 이미 계약일이 지나 묵시적 연장이 행해졌기 때문에 다음 세입자가 들어올 때까지 방값과 관리비는 내가 내야 했다. 그까짓 거 아무 일도 아니었다. 여기 있다가 마음이 죽느니 그 돈을 내는 게 나았다. 알겠다고 하고 부동산에도 집을 내놨다. 집을 내놓자마자 모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서울을 떠나는 게 잘하는 일일까 고민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막상 서울을 떠나 내려가게 될 걸 생각하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작가 일이야 건 바이 건으로 일하는 엔터테인먼트가 있으니 필요할 때 서울에 올라오면 되는데(조카 집에서 지낼 계획이었다), 혹시라도 TV 쪽 일이 들어오게 되면 내가 포기할 수 있을까. 충동적인 결정인 건가.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은 대근이 없이 단 하루도 서울에서 머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부동산이었다. 집을 내놓은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방을 보러 오겠다고 했다. 내심 기분이 이상했다. 이렇게 상황이 빨리 흘러간다고? 후회할 시간도 결정을 번복할 시간도 없었다. 짐을 빼는 중이라 내부가 엉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입자의 계약은 방문 후 30분 만에 체결됐다. 남기고 갈 것들을 논의하고 다음 세입자의 입주 날까지 곧바로 정해졌다. 이번 주말이었다. 급했다. 엄마와 나는 하루 만에 모든 짐을 빼야 했기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 와중에 엄마는 계속해서 신기해했다. 돌아가는 모든 상황이 이렇게 들어맞을 수가 없는데. 내가 고민하던 것에 답이 내려지고, 서울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누군가가 나를 떠미는 것처럼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다니. 심지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짐을 싣고 내려가기 위한 트럭도, 두 번의 통화 만에 반값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우리는 분주했다. 대근이가 떠났다는 사실보다 당장 짐을 싸야 하는 게 더 급했기에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일했다. 모든 걸 버렸고 챙길 것만 챙겼다. (그래도 5년의 생활 흔적이니 짐이 산더미였다) 저녁은 남은 죽으로 대충 때우고 계속해서 짐을 쌌다. 바쁘니까 오히려 나은 거 같기도 했다. 한 번씩 선반 위에 올려놓은 유골함을 봤다. 숨이 답답해져서 나는 다시 미친 사람처럼 일했다. 그러다 구석 구석에서 대근이의 흔적을 찾을 때면 멍해졌다. 수염 한 가닥을 찾고는 울음을 삼켰다. 보관할까 고민하다가 잘 태워주었다.



그날 새벽, 엄마와 둘이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대근이가 이겨내지 못한 건, 내가 내 행복과 명을 나눠달라 기도해서 그런 걸까. 신이 대근이에게 "너 누나의 명을 받고 좀 더 살아볼래?"라고 말했을 때, 대근이는 나를 위해 더 사는 걸 포기한 건가. 내가 그렇게 기도해서 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걸까. 방충망을 닫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죄책감이 들 때마다 그 마음을 밀어냈지만, 무거운 마음은 파도처럼 내게로 쓸려왔다. 엄마는 말했다. 대근이의 명이 여기까지였던 거다.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대근이는 행복하게 잘 살다가 떠났다. 누나 이제, 더 자유롭게 하고 싶던 거 다 하고 살라고 이렇게 네 등을 떠밀어 주는 거라고 말했다. 듣고 있으니, 정말 그런 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모든 게 빛의 속도로 진행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조금의 잡음도 없이 모든 게 정해진 일처럼 진행되는 게 신기하긴 했다. 내 감정에 예민했던 대근이가 정말로 날 위해 버티지 않고 떠난 거라면 난 슬퍼해선 안 됐다. 마음을 다잡았다.


내 새끼와의 이별은 어차피 예정된 거였다. 반려동물의 시간은 사람과 달라서, 우리에게 별일이 없는 한 우린 그들의 마지막을 배웅할 의무가 있었다. 나는 그 시기가 조금 빨리 찾아온 것뿐. 대근이와의 추억을 마음에 묻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도 다행인 일이라 생각했다. 나는 대근이었고 대근이는 나였으니, 우린 비로소 같이 있을 수 있게 된 거라 생각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